20일(현지 시각)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던 남성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트위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反戰)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전면전으로 확산할 경우, 러시아도 막대한 인명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 제재로 인해 경제가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지난 13일 대규모 반전 시위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1000여 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러시아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함께 들고 나와 모스크바 중심지를 행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싸울 이유가 없다”며 “양국 정상이 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시위는 채 1시간이 안 돼 경찰에 의해 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유명인 150명이 인터넷상에 ‘전쟁 반대’ 공개 서한을 내놓기도 했다. 유명 록 가수와 러시아의 유명 지식인, 민주화 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군사적 수단으로 외국을 위협하는 외교 정책은 범죄”라며 “러시아는 과거 전쟁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잃었으며, 이로 인해 ‘전쟁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 속에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한 퇴역 장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파문이 일기도 했다. 반(反)서방 민족주의자이자 구(舊)소련 찬양론자로 유명한 레오니드 이바쇼프다. 그는 “푸틴이 국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돌리고, 부패한 엘리트들의 이해를 분산시키기 위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썼다. 이 글은 퇴역 군인의 모임인 ‘전(全) 러시아 장교 회의’ 웹사이트에 올라와 76%의 회원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러시아 내 반전론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현지 언론들이 보도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전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여론에 호소하는 것도 어렵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시위 규정이 엄격해 단순한 1인 시위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반(反)정부 성격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 일도 벌어진다. 모스크바의 한 서방 외교관은 “외신 기자들도 비자 갱신권을 쥔 러시아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해 크렘린(대통령궁)의 발표를 전하는 데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