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 도심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러시아의 침공과 관련한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외 탈출을 돕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신변 위협에도 미국의 해외 피신 제안을 거절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는 대신 수도 키예프에 남아 ‘결사 항전’의 뜻을 담은 영상을 연일 올리며 국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닌 연기자 출신으로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국가 지도자에 올랐던 그가 전면 침공을 단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서 예상 밖으로 침착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그의 면모가 재평가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문가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트위터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의 용기를 기억할 것”이라고 썼다.

미국의 주요 매체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몇 주간 젤렌스키에게 “러시아가 당신을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경고를 전달했다. 지난 1월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우크라이나를 찾았을 때도 젤렌스키에게 “신변 안전을 주의하라”는 취지의 경고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지난 며칠간 젤렌스키에게 대피할 만한 안전한 장소를 제안하는 등 안전 문제 전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애덤 시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러시아가 젤렌스키를 납치·감금하거나 억지로 항복을 받아낼 것을 우려한다”고 WP에 말했다.

복수의 전·현직 미 국가안보국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전으로 이어져 과도한 비용을 치르기보다 젤렌스키를 제거하는 빠른 방법을 푸틴이 선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는 미국의 피신 제안을 거절하고 키예프에 남아 소셜 미디어로 현지에서 찍은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지난 25일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그는 “적군이 나와 내 가족을 1순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들은 지도부를 사살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정치를 파괴하려 한다”고 했다. 다음 날인 26일에도 키예프 중심부의 대통령 관저 앞에서 찍은 ‘인증 영상’을 올렸다. 그는 항복했거나 도망쳤다는 소문에 대해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조국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젤렌스키는 27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러시아를 제소했다고 밝히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극을 벌인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