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제재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지도자들이 동맹인 바이든 정부의 석유 증산 요청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 시각)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나흐얀 UAE 왕세제가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는 통화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최근 몇 주간 바이든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유가 안정 협의를 위해 빈살만 왕세자 등과 통화를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미국과 중동 국가 관료들이 전했다. 미국은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끊길 경우 중동과 남미 등 다른 지역 산유량을 늘리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당장 추가 증산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중동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의 이런 입장 변화는 바이든 정부의 중동 정책에 대한 오랜 불만 때문으로 보인다고 WSJ가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살만 왕세자를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또 사우디가 개입한 예멘 내전에서 군사 지원의 손을 뗐고, 사우디의 숙적인 이란과 핵협상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최근 시사 잡지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당신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사우디 지도자를 멀리하면 손해일 것이고, 미국 국익을 생각하는 것은 그에게 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은 사우디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바이든이 조만간 사우디를 직접 방문하는 등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는 8일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금수 발표로 인해 장중 130달러를 돌파하는 등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날 배럴당 123.70달러에,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는 127.98달러에 마감해 각각 2008년 이래 최고가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