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다음 달 10일 시작되는 프랑스 대선 판도마저 뒤흔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등한 반면,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와 에리크 제무르 레콩케트(프랑스회복운동·REC) 후보 등 마크롱 대통령과 접전을 벌여온 극우 후보들의 지지율은 뚝 떨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주목받는 동안, 극우 후보들은 과거 친러 행보가 부각되며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것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에선 “마크롱의 재선에 파란불이 켜졌다”며 이번 대선이 그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각) 프랑스의 3개 주요 여론조사 회사가 발표한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30~3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의 정치 경력 중 최고 지지율이다. 여론조사회사 엘라브의 지난 8일 조사에서는 33.5%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에 대처하고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리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4~25%대에 정체되면서 극우 진영에 역전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르펜이 20%를 넘나드는 지지율로 그를 바짝 추격하고, 제무르도 1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두 극우 후보가 단일화하면 1차 선거에서 마크롱을 뛰어넘으리라는 예상이 나왔다. 보수 공화당(LR)의 사상 첫 여성후보 발레리 페크레스도 그를 위협했다. 페크레스는 마크롱의 지지층인 중도 우파 유권자를 흡수하며 “마크롱과 페크레스가 2차 결선에 가면 페크레스가 이길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러한 후보간 경쟁 구도에 격변이 일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28~29%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최근에는 30%대에 안착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경쟁 상대인 극우 후보들의 지지율은 일제히 하락세다. 2위 르펜의 지지율은 16~18%대로 지난해 11월의 21%에서 3% 이상 하락했다. 한때 3~4% 포인트에 불과했던 1위 마크롱 대통령과 지지율 격차도 12~15% 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프랑스 극우의 또 다른 상징으로 부상한 에리크 제무르의 지지율도 지난달 14~18%에서 이달 들어 11~13%대로 내려 앉으며 고전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극우 후보들의 지지율 하락을 “과거 친(親)푸틴, 친러시아 행보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르펜 후보는 지난 2011년 “(러시아를 다시 강하게 만든) 푸틴을 존경한다”고 했고, 2017년 대선 때는 홍보 자료에 푸틴과 만나 악수를 하는 사진을 넣기도 했다. 지난달 전쟁 발발 직전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 한 탓에 위기가 발생했다”며 푸틴을 “이성적이고 냉혹하며, 인상적인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에리크 제무르도 2018년 “나는 프랑스판 푸틴이 되고 싶다”며 푸틴을 자신의 리더십 모델로 꼽았다. 2020년엔 “나는 러시아와 동맹을 선호한다”며 “미국·독일·영국보다 러시아가 훨씬 더 믿을 만한 나라”라는 말도 했다.
이들 발언은 당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엔 극우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망언’ 취급을 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일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反)러 여론’이 급격이 확산한 탓이다.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에는 프랑스 극우 지지자의 55%가 “러시아에 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3%로 떨어졌다. 르몽드 등 주요 언론이 극우 후보의 과거 발언을 집중 조명하면서 핵심 지지층의 이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페크레스마저 이러한 반러 여론의 확산에 영향 받고 있다. 중학생 시절 소련의 국제 청소년 캠프에 참가해 러시아어를 배웠고, 친러적 입장을 보여왔다는 것에 발목이 잡혔다. “러시아의 유구한 문화적 유산을 사랑한다”거나 “위대한 러시아인들이 평화를 선택할 것을 바란다”는 등의 발언마저 문제시되고 있다. 한때 20%를 넘었던 그의 지지율은 현재 11%대에 불과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셀리아 벨린 연구원은 “프랑스인들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저항감 때문에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전쟁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러시아에 각을 세워 온) 마크롱 대통령이 그 덕을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