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1일째인 1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총 15개 항목의 잠정적 ‘평화 협정’ 초안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그 세부 내용과 실행 방안을 놓고 추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협상에 참여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와 군사적 중립 선언,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외국 군사 기지나 무기 배치 불가 등을 조건으로 러시아군이 지난달 24일 침공 이후 점령한 지역에서 모두 철수하고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이 논의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15개 항목의 평화 협정 초안을 작업 중”이라고 전했다. 이들 15개 항목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앞서 러시아 매체 R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 협상단이) 분명한 이유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타협에 이를 희망이 일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지위와 안전 보장 조치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며 “내가 보기에는 합의에 근접한 구체적인 문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협상이 보다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FT는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 입장이 월요일(14일)부터 변화가 있었다”면서 “이후 며칠간 대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측이 나토 가입 포기 및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중립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양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측 협상 대표인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FT에 “어떤 경우든 러시아군이 2월 24일 침공 이후 점령한 지역에서 모두 떠난다는 내용은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은 아직 적잖은 입장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스웨덴·오스트리아 모델의 중립국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비무장’이 조건이라 우크라이나가 거부 의사를 밝혔다. 포돌랴크 고문은 “중립국화 모델은 오직 우크라이나식으로만 돼야 하며, 법적으로 검증된 안전 보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억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2주 넘게 집중 포위 공격을 쏟아붓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 외곽의 한 병원에는 민간인 약 500명이 억류돼 있다. 마리우폴이 속한 도네츠크주의 파울로 키릴렌코 주지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인근의 (민간인) 400명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에는 의료진과 환자 100여 명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군은 병원 내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으며, 누구도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북부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도 직원 200여 명이 감금돼 있다. 러시아군은 개전 당일인 지난달 24일 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했는데, 이때 근무하던 직원들이 여태 갇혀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들은 죽과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며 한 차례 교대도 없이 원전 안전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대부분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휴대전화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세계 최악의 원전 재난 현장인 체르노빌이 임시 감옥이 됐고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