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이 넘도록 주요 도시를 점령하지 못하자 동부에 병력을 집중하는 내용의 전략 수정을 실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 사기 저하로 인한 전투력 한계를 넘지 못한 상황에서, 침략 명분이었던 돈바스 지역을 탈환하는 방법으로 승리를 선언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군 총참모부 제1부참모장 세르게이 루드스코이는 25일(현지 시각) 전황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공군과 방공 시스템이 사실상 파괴됐고 해군도 괴멸됐다. ‘1단계 작전’이 대부분 이행된 것”이라며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의 완전한 해방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돈바스는 친(親) 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활약 중인 곳으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한 지역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전폭 지원을 받으며 정부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것도 지난달 러시아가 이들 국가의 독립을 전격 승인하면서부터다.

러시아의 이날 발표는 반군 측을 지원하고 영역 확장을 돕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차지할 경우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 등을 통해 북쪽에서 남하하는 자국군과의 연계도 강화할 수 있다.

러시아 국기를 단 도네츠크인민공화국 탱크. /TASS 연합뉴스

다만 일각에서는 장기전이 된 전쟁에서 여러 한계에 부딪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한 ‘야욕’을 축소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하려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러시아는 애초 우크라이나 전역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수도인 키이우는 물론 남부 전략 요충지인 항구도시 마리우폴마저도 통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평화 협상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이라도 확보해 ‘전쟁 승리’라는 명분을 얻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러시아 군사 전문가 마이클 코프만은 “군사적 성공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을 우선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돈바스를 장악하면 국내 관객들에게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BC는 실제로 러시아가 10개 전술 대대를 새로 구성해 돈바스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도심으로의 러시아군 진격은 정체됐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후퇴하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했다. 키이우 인근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듯 방어태세를 구축하는 모습도 관찰됐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전략 변경이 속임수일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러시아군 분석 전문가는 뉴욕타임스(NYT)에 “러시아가 전쟁 목표 범위를 실제로 축소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새로운 군사력 보강을 위한 ‘속임수 동작’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목표 지점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전략을 세웠다면, 우크라이나군이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