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만과 고립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불러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짧으면 3~4일, 길어야 1주일이면 수도 키이우 함락이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에 고전하며 수도 근교에서는 퇴각한 상황이다. 현재는 목표를 수정해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군 사망자가 최대 1만5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는 전쟁에 일가견이 있는 푸틴 대통령이 어쩌다 전략적인 늪에 빠졌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가 이웃 나라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WP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은 “푸틴이 편견과 왜곡된 정보에 사로잡혀 고립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유럽정책분석센터 CEO인 알리나 폴리아코바는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속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 생각하며 연구를 게을리했다”며 “모스크바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강인함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 의지에 대해 완전히 오판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인터넷에도 거의 접속하지 않는다. 그는 수년 동안 러시아 독립 언론을 걸러내고, 건설적인 피드백이 없는 권위주의적 체제를 구축했다.
영국의 러시아 전문 조사 기관인 마야크 인텔리전스의 마크 갈레오티는 “황제의 식탁엔 나쁜 소식이 올라오지 않는다. 푸틴의 고립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제한되면서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인 미하일 지가르의 저서 ‘모든 크렘린 사람들’에 따르면 푸틴은 어떤 사람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수년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책을 스스로 관리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 유럽 관료들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빨리 붕괴될 것이란 가정하에 침공을 단행했다”고 입을 모은다. 러시아 국영 뉴스는 개전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미 도망갔다고 선전했다.
지가르는 “푸틴이 2014년의 기억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푸틴은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되고 친서방 임시정부가 들어서자, 즉각 개입해 우크라이나를 내전 상태로 빠뜨렸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신속히 자국에 병합했다.
야누코비치가 조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봤던 푸틴은 젤렌스키에게 비슷한 시나리오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푸틴은 실제 2014년 유럽의 한 고위 관리에게 2주 안에 키이우를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 등의 국가에 대한 정보를 주로 SVR(대외정보국)에 의존한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같은 근교 국가를 담당하는 곳은 FSB(연방보안국)다.
러시아 정보 전문가인 안드레이 솔다도프는 “FSB는 친러시아 성향의 협력자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수백만 달러를 썼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대표적인 친러 정치인인 빅토르 메드베드추크는 지난해 반역죄로 기소됐다”며 “정보의 흐름과 상관없이 푸틴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최고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이는 제국주의의 불행한 유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