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도시 대부분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우크라이나군 수천 명이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다짐하며 시 외곽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집결했다. 러시아군이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며 최후통첩을 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거부하며 최후 결전 태세에 돌입,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 러시아군이 화학무기나 전술핵무기로 완전 초토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17일(현지 시각)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이 함락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부 지역은 여전히 우리 군 통제에 있고, 잔존 병력도 마지막까지 항전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제철소 일대에서 교전이 이어져 연기와 불기둥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친러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수장 데니스 푸실린은 “제철소를 요새 삼아 저항하는 우크라이나군에 항복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조우스탈은 마리우폴 동쪽 해안에 있는 유럽 최대 제철소다. 면적이 11㎢로 여의도(2.9㎢·윤중로 제방 안쪽 기준)의 4배에 육박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해병대와 아조우 연대, 민병대 등 2500~3000명이 집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 전문가 올레크 즈다노프는 로이터통신에 “넓은 공간에 미로처럼 뒤얽힌 수많은 건물과 작업동, 용광로가 산재해 있어 매복한 저항군을 하나하나 찾아내 소탕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에는 러시아군 공격을 피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터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학무기 등으로 초토화하는 것 외엔 쉽게 점령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12일 친러 반군이 드론을 이용한 화학무기 공격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미국 CBS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리우폴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며 러시아군이 화학무기나 전술핵무기를 동원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마리우폴 상황이 러시아와 협상의 ‘레드라인(한계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마리우폴이 비인도적 방법으로 함락되면 평화 협상이 완전히 결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우폴 시내를 장악한 러시아군은 ‘이동 허가증’을 발급하며 민간인 통제도 본격화했다.
러시아군은 이날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보복성 공격을 이어갔다. 키이우에는 17일까지 3일째 공습이 벌어져 브로바리 지역의 탄약 생산 공장 등이 파괴됐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키이우로 귀향을 자제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동부 제2 도시 하르키우에선 지난 4일간 포격으로 18명이 사망하고, 106명이 부상했다. 서부 중심 도시 르비우에는 18일 미사일 4발이 떨어져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중부 드니프로에도 미사일 2발이 날아들어 철도 일부가 파괴되고, 2명이 부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동부 영토를 포기할 의향이 없다”며 항전 의지를 이어갔다. 그는 “돈바스를 점령한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 공격을 다시 시도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푸틴 대통령이 (빠른 승리를 위해)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AP통신은 “러시아가 전투 경험이 많은 시리아 용병을 대거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내놨다.
러시아군은 지난 15일 흑해 함대 미사일 순양함 모스크바함의 침몰 과정에서 40여 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실종되는 피해를 봤다고 영국 BBC가 이날 보도했다. 모스크바함은 그 전날 우크라이나군의 ‘넵튠’ 지대함 미사일 2~3발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러시아군은 “화재로 탄약고가 폭발한 사고”라며 “승조원 500여 명이 모두 구조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