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에 올라탄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18일(현지시간) 러시아군과 대치하는 하르키우주 이지움 지역의 전선 인근에 대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도네츠크주 슬라뱐스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지움은 러시아군에 사실상 함락된 것으로 전해졌다./AF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1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전면 공세를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수도 키이우 등 북부 지역에서 철군하며 “돈바스 지역에 전력(戰力)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지 24일 만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수만 명의 병력을 계속 추가 투입하면서 전투 양상은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긴급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돈바스 전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루한스크주의 크레미나와 베도네츠크, 루비즈네, 리시찬스크, 포파스나 등 돈바스 전역에서 다연장로켓포와 자주포, 야포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북동부 슬로보잔스키와 하르키우 인근 이지움 등에서는 대규모 러시아 병력 이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이날 공격으로 일부 도시 점령에 성공했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대규모 기갑 장비를 앞세워 크레미나시에 진입했다”며 “(우크라이나는 크레미나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고 밝혔다. 하르키우와 돈바스를 잇는 요충지인 이지움도 대부분 러시아군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지움 시내에 민간인 1만~1만5000명이 남아 있다”며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와 같은 민간인 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식량배급 기다리는 부차 주민들 - 1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소도시 부차에서 주민들이 적십자사의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무차별 학살이 자행된 부차에선 지금까지 4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차 집단 학살 의혹이 제기된 제64기계화 여단에 “특별군사작전 과정에서 집단적인 용기와 강인함을 보여줬다”며 ‘근위(Guard)’라는 영예 칭호를 수여했다. /AP 연합뉴스

크레미나시에서는 러시아군이 승용차를 향해 총격을 가해 4명이 숨졌고, 크라마토르스크시에는 미사일 공격으로 주거지 10여 곳이 파괴됐다. 루한스크주 졸로테시에선 포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아무리 몰려와도, 우리는 계속 싸우고 방어할 것”이라며 항전을 독려했다.

러시아군은 동부와 남부 전선에 병력을 추가 투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일주일 새 이 지역의 러시아 부대(대대전술단) 수가 65개에서 76개로 늘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현재 러시아 병력은 총 5만~6만명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남부 마리우폴이 함락되면 12개 대대전술단이 돈바스에 추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돈바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의 분쟁에 개입해 민간인 살해와 고문 등을 자행해 악명 높은 와그너 그룹은 약 1000명의 병력을 돈바스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가 공세를 강화하면서 전장은 서부 지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서부 중심 도시인 르비우에는 17일부터 미사일 4~5발이 떨어져 시내 상점과 인근 건물에 있던 7명이 사망했다. CNN은 “개전 이후 르비우에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한편 함락 직전인 남부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벙커버스터’ 공격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벙커버스터는 지하 시설물 타격을 목적으로 관통력과 폭발력을 높인 무기다. 데니스 프로코펜코 아조우 연대 사령관은 19일 “아조우스탈 에 민간인 수백 명이 대피 중”이라며 “러시아 점령군과 그 대리자인 루한스크·도네츠크인민공화국이 재래식 폭탄과 벙커버스터 등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