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0일(현지 시각)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오른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EU)의 6차 대(對)러 제재안이 헝가리의 반대로 난항에 빠졌다. 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설득하기 위해 수도 부다페스트를 찾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이번 제재안이 통과되려면 27개 EU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하다. 헝가리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 금수 조치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헝가리는 왜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반대하나.

헝가리의 러시아산 석유 의존도는 65%에 달한다. 금수 조치를 하려면 준비 기간이 최소 5년은 걸리고, 정유소와 파이프라인 정비에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헝가리 측 설명이다. EU는 2024년 말까지 유예 기간을 주겠다고 헝가리에 약속했지만, 오르반 총리는 지난 6일 “(금수 조치는) 헝가리 경제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친(親)푸틴’ 총리가 반대의 전면에 있다는데.

1998~2002년에 이어 2010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권좌를 지키는 오르반 총리는 대표적인 친푸틴 인사다. ‘리틀 푸틴’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지난 2월 러시아 침공이 본격화하자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국제사회에 동조한다고 대외적으로 밝혔지만,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라며 우크라이나군 지원 무기가 자국 영토를 지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앞서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병합에 따른 EU 경제 제재에 대해서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며 반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유럽에서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친러 행보를 고수하는 오르반 총리가 이번 EU 제재안에 응할 확률이 매우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EU 제재안에 반대하는 나라는 헝가리뿐인가.

슬로바키아와 그리스, 몰타 등도 요주의 국가로 꼽힌다. 슬로바키아는 러시아산 석유 의존도가 70%로 헝가리보다 높다. 하지만 “푸틴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조치에 동의한다”고 밝혀 합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슬로바키아는 EU에 최소 3년의 유예 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해운업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와 몰타 등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뿐만 아니라 수송까지 금지하겠다는 EU 제재안에 우려를 표하자, EU가 이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