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80일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 내에서 이번 침공에 대한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장악하며 남부 크림반도에서 동부 돈바스로 이어지는 ‘남부 회랑’ 확보에 성공했지만, 북동부에서는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선에 투입된 전투 부대 내부에서도 “전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19일(현지 시각)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이 전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보낸 용병과 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카디로프는 러시아의 주요 분쟁 지역에 체첸군을 파견해 민간인 학살 등 잔혹 행위를 벌여 ‘푸틴의 충견(忠犬)’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체첸군은 수도 키이우와 마리우폴 공격에 참여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미하일 호다료노크 예비역 대령도 17일 국영 TV ‘로시야1′에 출연, “러시아가 (스웨덴과 핀란드 등의 나토 가입으로) 지정학적으로 고립됐다. 전 세계가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있다”며 비관론을 내비쳤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계속 밀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18일 “하르키우 북쪽 35㎞ 데멘티예프카 지역을 탈환하는 등, 더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 공업 도시 세베로도네츠크를 점령하기 위해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에서 거둔 전과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18일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저항하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계속 항복해 투항자가 총 959명”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이들 중 과거 돈바스 내전에 정부군으로 참여한 사람을 골라내 전쟁 범죄자로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무인기(드론)에 맞서 레이저 무기를 동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부총리는 관영 방송 인터뷰에서 “군 특수부대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레이저 무기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은 “‘페레스베트’라는 이름의 레이저 무기로, 5㎞ 떨어진 드론에 강력한 레이저를 쏴 5초 만에 불태울 수 있다”고 전했다.
CNN 등 외신은 나토 당국자를 인용해 “앞으로 몇 주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어느 쪽도 전선에서 큰 진전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나토 내에서는 전쟁 주도권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 공격으로 폐허가 된 북부 키이우 인근의 부차, 호스토멜, 이르핀 등 6개 도시 모습을 3차원 가상현실(VR) 형식으로 보여주는 ‘전쟁 기억 박물관’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이날 밝혔다.
한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집권 정의개발당(AKP) 회의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터키가 찬성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