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 시각) 국무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일 넘게 장기화하는 가운데, 인접국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6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가능 여부를 결정지을 주요 인물이 되고 있다. 그는 터키가 테러 단체로 간주하는 ‘쿠르드 민병대’를 스웨덴·핀란드가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WSJ는 정치 분석가들을 인용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이득을 얻어내는 대신 결국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용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잇달아 통화하며 양국 대표단 협상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협상에서 정전(停戰) 조치와 같은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두 나라와 흑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중재자 역할을 해냈다는 긍정적 관측이 국제사회에서 나왔다. 터키는 그간 안보 분야에서도 러시아제 지대공미사일 ‘S-400′을 수입하면서 터키제 공격형 무인기(드론) ‘바이락타르 TV2′를 우크라이나에 수출하는 등 양국 간 등거리 노선을 지켜 왔다.

이러한 행보 덕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관리들과 많은 연락을 주고받는 인물이 됐다”고 WSJ는 전했다. 특히 그가 자국 내 리라화 폭락, 물가 상승률 70% 돌파 등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을 이같은 외부 움직임으로 잠재우려 한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그는 미국의 반대에도 시리아에서 쿠르드 민병대를 노리는 새로운 군사작전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는데, 정치 분석가들은 이 역시 지금의 글로벌 위기를 활용해 국내외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터키 앙카라대학의 일한 우즈겔 정치학과 교수는 “이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형적 방식”이라며 “그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라면 국내외 모든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달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