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4일(현지 시각) 바티칸에서 열린 장애 어린이들과의 만남 행사장에 휠체어를 탄 채로 손을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르면 연내 퇴임할 수 있다는 전망이 가톨릭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교황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예전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기 어려워지자, 자신의 교회 개혁을 이어나갈 ‘젊은 인물’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말도 나온다. 전임 베네딕토 16세처럼 프란치스코 교황도 명예롭게 물러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퇴임한 베네딕토 16세가 여전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물러나면 후임 교황에게 큰 부담을 주기에 자진 퇴임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있다.

교황의 자진 퇴임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9일 새 추기경 21명이 대거 서임되면서부터다. 이 중 유흥식 라자로(70) 대주교를 포함해 총 16명이 차기 교황 선출권이 있는 80세 미만이었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이를 계기로 추기경단(Collegium cardinalis)에서 교황 선출권이 있는 추기경이 전체 208명 중 116명(약 56%)으로 늘어났고, 이들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 67명으로 과반수(약 57%)에 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여전히 추기경단의 다수(약 56%)인 116명은 전임 베네딕토 16세와 그 전임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중 교황 선출권을 가진 사람은 49명에 불과하다. ‘콘클라베(Conclave)’로 불리는 교황 선거는 투표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사람을 선출하게 되어 있는데, 과반수의 지지가 확인되면 세가 기우는 것이 보통이다. 이론적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하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을 후임으로 밀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올해로 85세인 교황은 만성적인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자주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무릎 연골을 지지하는 보강물을 삽입하는 수술도 받았다. 교황은 이런 와중에도 바티칸 내 여성 고위직을 확대하고, 일부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척결하는 등 가톨릭 교회의 더 많은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뜻에 공감한 젊은 교황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건강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일정을 교황이 소화하고 있는 것도 ‘퇴임 준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오게 한다. 교황은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신임 추기경 서임식을 이례적으로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이 휴가 중인 8월 27일로 잡았다. 그 다음 주에는 이틀간의 교황 주재 추기경 회의도 소집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전 교황들은 도시 대부분이 텅텅 비는 이 기간에 중요한 일정들을 소화하지 않았다”며 “이때 특별한 선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고 보도했다.

8월 28일 이탈리아 중부의 소도시 라퀼라(L’Aquila) 방문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날 라퀼라의 ‘산타 마리아 디 콜레마지오’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이 성당의 포르타 산타(Porta Sancta·거룩한 문)를 열어 이곳을 지나는 신자들이 자신의 죄를 특별히 용서받는 대사(大赦)의 기회를 줄 예정이다.

이탈리아 언론 매체들은 “이러한 대사 제도는 공교롭게도 1294년 즉위 5개월 만에 자진 퇴위한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의 칙령으로 확립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성당에는 첼레스티노 5세의 무덤도 있는데, 베네딕토 16세가 2010년 이곳을 방문한 뒤 3년 만에 퇴임했다는 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앞으로 행보에 더 큰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교황이 라퀼라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728년 만이다.

교황은 이 밖에도 7월 중 캐나다 순방이 예정돼 있다. 9월에는 카자흐스탄 방문을 계획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와 키이우 방문도 논의 중이다. AP통신은 “이런저런 정황이 맞물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진 퇴위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교황의 측근으로 알려진 오스카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온두라스 추기경은 AP통신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진 퇴위설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WP도 바티칸 내부 인사를 인용해 “교황이 전임 베네딕토 16세의 서거 전에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꺼려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