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 미군 군종 신부로 참전했다 중공군에게 붙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에밀 카폰(1916~1951) 신부의 무공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지난 달 27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서 열렸다. 그는 직접 총을 들고 적과 싸우는 전투병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동료 병사의 목숨을 구하거나, 헌신적으로 돌보고, 중공군의 탄압에 맞서는 등의 무용담이 포로에서 생환한 동료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비전투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2021년 태극무공훈장)과 미국(2013년 명예 훈장)에서 모두 최고등급 무공훈장을 받았다. ‘6·25의 예수’ ‘전장의 성자’ 등의 여러 별칭으로 추앙받고 있다. 카폰 신부는 지난해 유해가 뒤늦게 발굴되면서 성대한 귀향 행사를 치른 뒤 고향 캔자스주에 안장됐다. 지역 사회에서는 그를 천주교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중이다.
이날 제막식에서 동상 건립을 처음 제안했던 보이스카우트 대원 이언 모가도(14)군이 데이비드 레스퍼런스 주한 미 2보병사단장, 세스 그레이브스 험프리스 기지 사령관과 함께 베일을 벗기고 카폰 신부의 철모를 동판에 새긴 형태의 기념비를 공개했다. 그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축사도 했다. 주한 미군 자녀인 모가도군은 지난해 카폰 신부의 유해가 발견된 데 이어 유족이 방한해 청와대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인의 삶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추모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을 주한 미군 측에 직접 했다.
장래 희망으로 역사 교사나 군사 역사가를 희망한다는 모가도군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답사장소로 6·25 참전군인들이 잠든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꼽을 정도로 안보와 동맹에 관심이 많다. 카폰 신부의 추모비를 영내에 세우자는 모가도군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험프리스 기지 내에 마련됐고, 주한미군 안팎에서 자발적인 모금운동이 펼쳐져 5370달러(약690만원)가 모였다. 건립 추진 소식을 듣고 평택시국제교류재단 측 관계자들도 모금에 동참해 성금을 일부 보탰다고 한다.
재단 고문인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이런 취지의 모금일수록 한국사람들도 더 참여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비에는 카폰 신부의 이름과 그의 참전기록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가 새겨져있다. 또 ‘기도를 열심히 하자, 병사들을 위한 전례를 자주 하자, 무엇보다도 병사들의 모범이 되자’는 그의 평소 신조도 새겨져있다.
카폰 신부는 지난해 고향 캔자스주의 성당 앞에 기념 동상이 세워져있고, 지역 천주교회 차원에서 순례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고향 미국 뿐 아니라 그가 목숨을 잃었던 한국 땅에 한·미 양측의 정성으로 들어선 것이다. 다만 기념비가 미군 부대 안에 있어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미군 관계자는 “청소년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미군 시설 내에 전몰장병 추모 공간이 새로 들어선 유사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8군 군목 카렌 미커 대령은 “나는 개신교 목사이지만, 카폰 신부는 ‘신과 나라를 위한다’는 신조와 일치했던 군종병들의 완벽한 본보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다 목숨을 바친 카폰 신부의 삶은 한미동맹이 얼마나 굳건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지를 말해준다”며 “한국 지역 사회와 협력해 그의 삶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선종한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카폰신부 일대기인 ‘종군 신부 카폰’을 직접 번역했고, 개정판을 유작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