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눈물을 흘리고 갔습니다. 한국 사람은 망국(亡國)의 역사가 비통해서 울고, 일본인들은 사죄의 눈물을 흘렸지요. 북한 사람들은 차마 표현을 못해 속으로만 울었어요.”
지난 20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개관 25주년 행사가 열렸다. 기념관의 역사를 추억하던 송창주(83) 관장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결국 눈물을 쏟았다.
이 기념관은 1907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고종 황제의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묵으며 활동했던 드용(De Jong) 호텔 건물에 조성됐다. 이준 열사는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1905년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폭로하고, 국제 여론의 힘으로 이를 파기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와 강대국들의 냉대로 회의에 참석조차 못 했고, 그해 7월 이곳에서 분사(憤死)했다.
이후 85년간 까맣게 잊혔던 이 호텔 건물을 네덜란드 교민인 송창주 관장과 남편 이기항(86) 이준아카데미 원장 부부가 발굴했다. 두 사람은 1992년 이 건물의 사연을 적은 현지 신문 기사를 보고 “‘유럽 유일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재를 털어 건물 매입에 나섰고, 직접 이준 열사와 밀사단의 흔적과 자료, 유품을 찾아 1995년 8월 개관했다. 이 원장은 “본래 2020년이 25주년이지만, 신종 코로나로 인해 계속 미루다 이제야 행사를 열게 됐다”고 했다.
기념관은 1층부터 3층까지 각종 전시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2층에는 당시 이준 열사가 지내고 분사한 방을 재현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7000여 명이 방문하는 등, 27년간 줄잡아 9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두 사람은 이북 출신의 ‘실향민’이다. 송 관장은 “분단과 망향의 아픔을 안고 살아 왔기에 이준 열사를 분사케 한 망국의 한을 더 절절하게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원장은 평안북도 강계, 송 관장은 평안남도 평원이 고향이다. 공산화로 재산을 빼앗긴 부모를 따라 각각 1948년과 1947년 38선을 넘었다. 이후 이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송 관장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했고 1972년 네덜란드로 와 한국 상품을 유럽에 진출시키는 일을 해왔다.
이날 행사에는 얀 반 자넨 헤이그 시장과 무라오카 다카미쓰(村岡崇光)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명예교수, 정연두 주네덜란드 대사, 교민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반 자넨 헤이그 시장은 “이준 열사는 민족과 조국을 위해 싸웠고 헤이그의 위대한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무라오카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는 주변국 피해에 대해 계속 침묵하고 있다”며 “변명의 여지 없는 가해자(일본) 역시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