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각)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헌안 반대론자들이 개헌안 부결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원주민의 권리를 강화하고, 성 평등·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는 등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내용이 담긴 칠레 헌법 개정안이 4일(현지 시각) 국민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번 개헌은 지난 3월 취임한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라 이번 부결로 보리치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칠레 선거관리국은 이날 개헌 찬반 국민투표 결과 찬성 38.1%, 반대 61.9%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보리치 대통령은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개헌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1개 388조항으로 이뤄진 이번 개정안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라는 평을 받았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인 1980년 만들어진 현 헌법을 완전히 바꾸는 내용이 담겼다. 칠레가 다민족 국가임을 명시하고, 원주민 국회의원 할당제 등 전체 인구 1500만명 중 13%가량을 차지하는 원주민의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 공공 기관 여성 채용 비율 50% 이상 유지, 낙태권 보장 등 양성평등에도 초점을 뒀다. 환경 규제 강화, 사회복지 제도 확대 등과 함께 난민 추방 금지 등의 내용도 담겼다.

칠레는 지난 2019년부터 사회 불평등, 빈부 격차 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시위가 이어지면서 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2020년 국민 80%가량이 개헌에 찬성해 본격 추진됐다. 하지만 막상 내용이 개정안이 공개되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이번 국민투표 결과 좌파 성향이 강한 수도 산티아고를 포함, 칠레 모든 도시에서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왔다. 일부 조항이 추상적이고,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급진적인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번 부결로 보리치 대통령은 더욱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당선된 보리치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이번 헌법 개정을 동력 삼아 사회 전반 구조 개혁에 나설 예정이었다. BBC방송은 보리치 대통령이 내각을 좀 더 연륜 있고, 중도 성향의 정치인들로 채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