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중국 베이징의 애플 스토어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미 최대 기업인 애플은 순이익의 40%를 중국에서 낼 정도로 중국에 생산기지로서나 소비 시장으로서 크게 의존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는 ‘탈(脫)중국’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 최대 기업 애플·구글도 중국 밖에서 신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형 정보통신 기업(big tech·빅 테크)들은 그동안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에 크게 의존해왔는데, 정치·안보·경제적인 면에서 커져 가는 ‘차이나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애플은 오는 7일, 구글은 10월 중 각각 신형 스마트폰인 ‘아이폰14′와 ‘픽셀7′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들의 스마트폰이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부 생산된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아직 비중은 크지 않지만 아이폰14는 인도에서, 픽셀7은 베트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빅테크들의 중국 밖으로의 생산 이전은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애플은 베트남에서 아이패드를 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대만 폭스콘과 럭스쉐어 정밀은 최근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애플워치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중국에 대규모 제조 시설을 둔 애플이 중국 밖에서 주요 전자제품 라인 생산에 돌입한 건 처음이다. 애플 협력사 200곳 중 45곳이 베트남 등 인근 아시아 지역으로 옮겨갔다.

지난 2018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컨퍼런스(WAIC)에서 구글 로고 앞에 행사 관계자가 서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올해 게임기 엑스박스를 베트남 호찌민에서 출하했다. 아마존은 인도 첸나이에서 파이어TV 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모두 얼마 전까지 100% ‘메이드 인 차이나’ 였던 제품들이다. 물론 아직도 이들 기업의 제1 생산기지는 중국이지만 NYT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컨설턴트를 인용, “아직 이전하지 않은 기업들도 모두 탈중국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체지로 각광받는 지역은 베트남 등 생산 단가가 싸고 규제가 적은 인근 아시아 국가다. NYT는 폭스콘의 경우 베트남 북부 투자에 15억 달러를 들인 데 이어 최근 일자리 3만개를 창출할 공장을 확대하는 3억달러짜리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전했다. 논과 사찰까지 공장지대로 바뀌고, ‘당장 공장 근로자 5000명을 급구한다’는 광고를 냈다고 한다. 베트남 근로자 월급은 중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애플·구글 등 미 빅테크들은 최근 십수년간 중국에 생산과 매출을 크게 의존, “공산당 명령에 따라 기업 경영을 한다”(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개인정보 보호나 검열 관련 핵심 정책들도 미국 내 인권·민주주의 원칙과 동떨어지게 ‘중국 맞춤형 정책’을 내놓는 경우까지 생겨 미 보수·진보 진영 모두에서 비판이 높았다. 중국의 신장·위구르 주민 인권 탄압에 미 빅테크가 이용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중 안보·무역 갈등 속에 트럼프·바이든 행정부의 정교한 중국 포위 전략이 이들 기업의 미래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전 정부는 중국에 대한 미국 첨단기술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산 스마트 기기 제품에 1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인플레 감축법’에서 전기차 배터리 원재료의 40%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생산할 때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해 사실상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했다.

이렇게 미국이 생산 기지로서의 중국 의존을 줄이고 미국 내로 생산을 전환하는 리쇼어링(re-shoring) 또는 우방국과의 교역을 늘리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으로 회귀하면서 최근 3년간 미국의 중국산 첨단제품 수입은 13.1%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만 첨단제품 수입은 119.1%, 인도네시아는 98.4% 증가하고, 한국산도 23.7% 늘었다.

지난 2019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마오쩌둥 초상화 앞 등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모습. 중국이 첨단기술을 이용한 감시 통제사회를 구축하면서, 구글 아마존 등 미 빅테크들이 공산당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기술 정책적으로 협조, 인권과 민주주의에 눈감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화는 중국이 글로벌 기업들에 과도한 정치적 부담을 안기며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영국 은행 HSBC는 중국 정부의 요구로 지난 7월 자회사에 공산당 위원회를 설치했다. HSBC가 지분 90%를 소유한 중국 투자은행 HSBC 첸하이증권이 공산당 위원회를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HSBC의 결정은 중국과 서방의 패권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중국 내 외국계 은행이 직면한 갈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해 대만 봉쇄 군사훈련에 나선 것도 외국계 기업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또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주요 도시 봉쇄를 일상화하면서 공급망 교란과 중국 내 수요 위축에 따른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도 탈중국을 자극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 유럽상회 보고서에 따르면 ‘조만간 중국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유럽 기업 비율이 올 2월 11%에서 4월 23%로 늘었다. 일본 기업인 혼다와 마쓰다 자동차, 파나소닉 등도 중국 외의 별도 공급망을 찾아 일본 내나 다른 지역을 물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