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올겨울 극심한 에너지난이 예상되는 독일과 프랑스가 전기와 가스를 나눠 쓰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역대 최고 수준의 경제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 등 EU 회원국에 대해 자국산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줄여 보복에 나선 상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각)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화상 회담 후 “우리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전기와 가스를 함께 나누어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필요 시 프랑스는 독일에 가스를, 독일은 프랑스로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라며 “조만간 독일에 가스를 보내기 위한 준비도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모두 에너지 사정이 팍팍한 탓에 실제로 나눌 수 있는 전기와 가스의 양은 전체 필요량의 2% 수준으로 많지 않다. 하지만, 양국의 겨울철 에너지 소비 패턴이 크게 달라 서로 ‘보완재’가 된다. 유럽 최대 원전 보유국인 프랑스는 일 년 중 겨울에만 전기를 수입해 왔다. 전기 난방을 하는 가정이 42%에 달해 겨울철 전기 수요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체 가정의 50% 이상이 가스로 난방을 해 가스 수요가 급증한다. 프랑스와 독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으로,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 같은 에너지 협력에 대해 “갑작스러운 한파로 일일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 일시적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는 전체 56개 원전 중 32개가 유지 보수를 위해 가동 중단 상태다. 프랑스의 전력 수출이 줄어 유럽의 에너지난이 가중됐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올겨울까지 수리를 끝내고 모두 정상 가동할 계획이지만, 겨울철 전력 수요 급증을 감당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가스는 이미 올겨울 필요량의 90%를 확보, 독일에 비해 여유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 “독일이 요청하면 총 20TWh(테라와트시) 용량의 가스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독일은 2021년 기준 약 536TWh의 전력을 생산해 이 중 약 16%를 프랑스 등 인접국에 수출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와중에 중동과 세계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오펙 플러스)는 이날 “다음 달부터 원유 공급을 하루 10만배럴씩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9월부터 하루 10만배럴씩 원유 공급을 늘리기로 했던 지난달 3일 결정을 한 달 만에 되돌린 것이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원유 생산량을 늘려달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구와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OPEC+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국제 유가가 급격히 하락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던 국제 유가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인 80달러대로 내려왔다. OPEC+ 회원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000만배럴 안팎이다.
한편 BBC는 이날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가 10월 예정된 전기·가스 요금 80% 인상안을 취소하고, 요금을 전격 동결하는 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로 인한 에너지 공급 업체의 손실은 정부의 차입금(빚)으로 메꾸고, 향후 10~15년에 걸쳐 에너지 세금으로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1000억파운드(약 157조원)가 소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