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업계의 30대 기업인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들어 저명한 러시아 기업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한 건 이번이 9번째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진 기업인들이 정권의 미움을 받아 살해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CNN은 러시아의 극동북극개발공사(KRDV)의 이반 페초린(39) 상무이사가 최근 사망했다고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CNN은 올해 들어 최소 9명의 러시아 기업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다고도 했다. KRDV는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페초린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이반의 죽음은 친구와 동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며 회사에도 큰 손실”이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러시아 국영 뉴스 통신사 리아 노보스티도 페초린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페초린은 사측의 공식 성명이 발표되기 이틀 전인 지난 10일 블라디보스토크 남부의 베레고보예 마을 인근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됐다.
올해 러시아 기업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건 페초린을 포함해 이번이 9번째다. 특히 사망자 중 6명은 에너지 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이들 6명 중 4명은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과 그 자회사, 나머지 2명은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가스 기업 루크오일 출신이었다.
불과 2주 전에는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67) 회장이 모스크바의 한 병원의 6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루크오일은 세계 원유 생산량의 2%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사법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마가노프 의장은 최근 심장마비 증상을 보인 뒤 병원에 입원했고,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지만, 로이터통신 등 서방 언론들은 마가노프의 죽음을 놓고 타살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루크오일은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며 공개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동정과 갈등의 종식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던 바 있어 타살 의혹에 불을 지폈다. 실제로 마가노프가 사망한 직후 측근 상당수는 “그가 자살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가스프롬과 관련해서는 지난 1월 투자 자회사 운송 부문 책임자 레오니드 슐만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달 뒤에는 가스프롬 고위 간부인 알렉산더 튜라코프가 자택 차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월에는 가스프롬 자회사 가스프롬뱅크 부회장 블라디슬라프 아바예프와 가스프롬이 투자한 러시아 2대 가스 기업 노바텍 전임 최고 경영자 세르게이 프로토세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관영 언론들은 사망 소식을 전할 때마다 “자살로 추정된다”고 했다.
가스프롬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알렉세이 밀러가 이끄는 회사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수출을 주도하며 러시아의 전비를 충당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과정을 잘 아는 이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