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 시각) 96세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0여 일간에 걸친 국장(國葬)을 마치고 19일 런던 인근 윈저성 내 성 조지 예배당 지하 묘당에서 영면(永眠)했다. 이날 마지막 장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 200여 국에서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왕족 등 500여 명이 런던을 찾았다. 유엔 총회나 올림픽, 주요 20국(G20) 정상회담 같은 글로벌 이벤트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명실상부한 ‘세기의 장례식’인 셈이다.
영국 국회의사당 건물 내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약 4일간 일반 조문을 마친 여왕의 관은 이날 오전 10시 44분부터 공식 장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했다. 11시 사원 서쪽 문에 도착한 여왕의 관을 근위대원 8명이 교회 한가운데 관대에 놓고, 파이프 오르간 반주와 함께 성가가 울려 퍼지며 장례 예배가 시작됐다. 영국 국교(國敎)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여왕은 1953년 대관식에서 저 제단 위에 올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삶을 살 것을 맹세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며 “섬김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이는 많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고 말했다.
앞서 18일 저녁 찰스 3세 국왕이 주최한 공식 리셉션에선 역대 최대 규모의 ‘조문 외교’가 펼쳐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 서방 주요국 수반이 대거 모였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드라우파디 무르무 인도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식에 초청받지 못했다.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은 리셉션에 나타나지 않았고, 북한과 이란 대표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장례식에 불참했다.
세계 각국 왕족은 총출동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부부,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필리프 벨기에 국왕 부부,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 등 유럽 국가의 군주 대부분이 참석했다. 또 카타르 국왕, 바레인 국왕, 요르단 국왕 부부와 왕세자, 오만 술탄,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총리, 쿠웨이트 왕세자 등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맺은 중동 왕실도 대거 자리를 함께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리셉션에 참석했지만, 함께 런던에 온 마사코 왕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부탄 국왕 부부는 전통 부탄식 상복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찰스 3세는 리셉션장을 찾은 각국 정상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윌리엄 왕세자 부부 등 왕실 가족을 직접 소개했다. 각국 정상과 왕족들의 비공식 만남도 이어졌다. 특히 유럽 각국 정상들과 중동 왕족들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에너지난으로 인해 중동 국가들과 긴밀해진 에너지 협력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려 정상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영국 정부가 초청한 각국 대표 500여 명을 포함, 장례식에 참석하는 총 2000여 명의 귀빈을 경호하기 위해 영국 경찰은 런던 시내에만 1만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경찰 측은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비 작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