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79) 총대주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부분 동원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네티즌들은 종교 지도자가 ‘신의 뜻’을 빌어 전쟁 지지 발언을 이어가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6일(현지 시각) BBC 모니터링팀의 프란시스 스칼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날 키릴 총대주교가 진행한 설교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총대주교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 죽는 군인들은 모든 죄가 씻겨질 것”이라고 했다. 스칼은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의 동원령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고 비판했다.
스칼이 올린 영상은 하루도 되지 않아 조회수 94만회를 넘겼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교회 수장이 전쟁을 옹호하는 건 처음 본다. 어이가 없다” “차라리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키릴을 진정한 총대주교로 인정할 수 없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한 네티즌은 “키릴 총대주교를 최전방으로 보내 그의 죄를 씻게 해주자”라고 비꼬기도 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발표한 당일에도 이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용맹하게 (전쟁터로) 가서 병역 의무를 다하라”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 이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멈출 때 사람은 ‘무적’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역사적으로 한 민족”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3대 기독교 분파 중 하나인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교파다. 신자는 러시아 내에만 약 1억명에 이른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많은 신도를 가지며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키릴 총대주교가 푸틴 대통령의 침략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키릴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던 바 있다.
이와 관련, 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85)은 지난 3월 키릴 총대주교에게 “푸틴의 복사(服事) 노릇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 말라”며 “우리는 평화의 대로를 추구해야 하고, 무기 사용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복사는 천주교 예배 의식에서 사제를 돕는 평신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