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 지난달 13일, 22세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그 후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란 전역 80여 도시로 확산되면서 광범위한 반(反)정부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 이란 휴먼 라이츠(IHR)는 이번 시위와 관련돼 사망한 사람이 201명이라고 12일 발표했다. 이 중 18세 이하가 23명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이란에선 수차례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2009년 대통령 선거 직후 불거진 부정 선거 의혹이 격렬한 시위로 이어지며 30여 명이 숨졌다. 2019년에는 유가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를 경찰이 강경 진압하며 2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8일 “이번 히잡 시위는 대통령 선거나 유가 인상, 생활비 급등 등 특정 이슈에 집중됐던 지난 시위와 달리 광범위한 연령과 계층, 민족을 아우르며 다양한 이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사태의 전개와 방향이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이 이번 시위의 특징이다. 이란은 54세 이하의 비율이 86.4%(한국은 67.6%)인 ‘젊은 국가’다. 그중 15~39세의 비율은 전체의 41%다. 1979년 친서방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현재의 공화국이 이란에 들어선 뒤 43년째 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40대 중반의 중년층까지 태어날 때부터 엄격한 종교 사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인터넷을 접하면서 자란 젊은 세대는 다르다. 이란의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들은 당국이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하자 익명 네트워크인 ‘토르(Tor)’ 등을 활용하며 시위를 확산시키고 있다. 중동 문제를 주로 다뤄온 미국의 싱크탱크 워싱턴 인스티튜트는 “이번 시위는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앞세운 젊은 세대가 이끌고 있다”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이란 신세대의 욕망이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세운 확고한 종교적 기준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들은 시위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 이란 시위에서 전국적으로 울려퍼지는 구호는 ‘여성, 삶, 자유’다. 이란은 15~24세 여성의 문해율이 98%로 이슬람 국가 중에선 높은 편이지만, 15세 이상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14%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똑똑한 여성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공정한 상황에서 아미니의 죽음이 여성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가디언은 “이란의 활기찬 여성들은 두려움 없이 시위 전면에 나서며 이슬람 공화국 체제를 조롱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확산되는 소셜미디어 영상에는 히잡을 쓰지 않은 소녀들이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겨냥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성 교장을 학교에서 몰아내기도 하고 하메네이의 사진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기도 한다. 정부에 대한 항의로 이란 여성들이 앞다퉈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도 이번 시위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아자니 등 유명인과 여성 정치인들도 이에 동참하며 세계적인 연대 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란이 처한 최악의 경제난과 맞물려 지도층에 불만을 품은 중산층과 노동자들도 거리에 나서고 있다. 이란의 최근 연간 물가상승률은 50%를 웃돌고 있다. 빈곤층 비율은 30%대로 치솟았다. 한때 60%였던 중산층 비율은 40%대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여성과 빈곤이 이번 시위를 끌고 가는 주요 동력”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일엔 이란의 주된 수입원인 석유 산업의 노동자들까지 반정부 시위에 가세했다. 외신은 남부 부셰르와 다마반드 석유화학공업단지의 노동자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동참했다고 전했다.
이란 당국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애써 외면한 채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최근 “이란 젊은이들을 선동해 반정부 시위를 일으킨 적들에 대한 복수를 조만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한 책임을 물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모기업인 메타 플랫폼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이 흔들리면 주변 시아파 국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라크는 8월 시아파의 거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정계 은퇴를 발표하면서 세력 간 유혈 사태가 발생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다. 레바논에선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5월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었다. 워싱턴 인스티튜트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많은 수니파 국가의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면, 이번 이란 시위는 시아파 엘리트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 시위가 ‘시아의 봄’으로 이어질지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