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확산하는 ‘유엔 개혁론’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참했다.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유엔이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남용할 수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의사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간 ‘라 스탐파’ 등 이탈리아 매체들에 따르면 교황은 18일(현지 시각) 출간한 ‘신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 희망의 미래를 위한 열 가지 기도’라는 책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했다. 교황은 이 책에서 “유엔은 과거 두 차례 경험한 세계대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설립됐지만, (유엔이 설립된) 당시와 지금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며 “오늘날의 전시(戰時) 상황에는 더 많은, 또 더 나은 다자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강제 조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안보리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막혀 제 역할을 못 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됐다. 유엔 상임이사국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다섯 나라로, 2차 대전 승전국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을 통해 수차례 러시아 제재안 결의를 시도했으나, 러시아의 ‘셀프 거부권’으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황은 이러한 상황을 지목하며 “국제기구는 (강대국 이익이 아닌)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본질을 되새겨, 가장 광범위한 합의의 결과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더 기민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유엔이 ‘인간 가족에 대한 봉사’라는 본연의 목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유기적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책은 내년 3월 즉위 10주년을 기념해 나왔다. 현재는 이탈리아어로만 출간됐고, 곧 영어판도 나올 예정이다. 교황은 책에서 서구 사회의 무기 생산·거래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그는 “세계의 군비 지출 증가는 매우 심각한 도덕적 문제 중 하나”라며 “평화에 관해 논하면서 무기 거래를 장려하거나 허용하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양심적 국가들이 핵무기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며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고,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