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훈련 중 진흙탕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러시아군 탱크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진흙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에 당한 것이다. /트위터

러시아군을 압박하며 점령지 탈환에 힘쓰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 정체는 가을 장마철에 생겨나는 진흙탕들이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을 도왔던 ‘진흙’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며 남부 헤르손 지역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안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전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라스푸티차는 봄가을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지에서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말한다. 3~5월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가을비가 내려 늪지대가 된다. 이때는 웬만한 자동차는 물론 장갑차의 통행마저 어려워져, 전쟁에서는 주로 공격 측이 불리해진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포획한 러시아군의 T-80 전차를 살피고 있다. /AP 연합뉴스

역사적으로는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섰던 프랑스 나폴레옹이 패전한 이유이기도 했다. 1941년 독소전쟁 당시 독일 히틀러의 기갑부대가 모스크바 진격에 실패한 것도 바로 라스푸티차 때문이었다. 모두 진흙이 외세로부터 러시아를 구원한 사례였지만, 이번 전쟁은 달랐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겨우내 얼었다 녹은 땅에 붙잡혀 곤혹을 치러야 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는 훈련 중이던 러시아군 탱크 12대가 진흙탕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1130마력 이상의 강한 엔진과 개선된 무장 시스템을 갖춘 주력 전차였지만, 굴착기를 동원하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비온 거리를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외신과 군사전문가들은 현재 전황이 반전됐다고 보고 있다. 전세를 역전시켜 점령지 탈환에 집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접전지로 꼽히는 헤르손의 경우 농경지 사이로 관개수로가 이리저리 나 있는 평원이 많아, 공세를 가해야 하는 우크라이나군에 더욱 불리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거대 병력과 화력을 기동력과 정보력으로 제압해왔다. 그만큼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해왔는데, 진흙탕에 발이 묶이면 군사장비 이동과 공격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워진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국은 헤르손 지역을 둔 일전을 앞두고 있다. 헤르손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동부 지방과 크림반도를 육로로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가장 먼저 점령에 성공한 도시이기도 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이곳 탈환에 성공한다면 러시아로서는 심각한 군사적·상징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