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로마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히잡 의문사’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이 깃발 한가운데 국장(國章) 부분에 엑스 자를 그려 넣은 이란 국기를 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 이후 이란 전역에서 두 달 가까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법원이 시위 참가자에게 처음으로 사형 선고를 내려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히잡 의문사가 촉발한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금된 시위대는 1만5000여 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법원은 13일(현지 시각)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반정부 시위 참가자 한 명에게 정부 청사 방화와 공공질서 저해, 국가안보 침해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고 도이체벨레 등 외신들이 이란 법원 웹사이트 ‘미잔온라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테헤란의 또 다른 법원도 시위대 5명에 대해 국가안보 침해 등 혐의로 징역 5~10년형을 선고했다. 현지 인권단체들은 “현재까지 1만5000여 명의 시위대가 구금됐고, 1000여 명이 기소됐다”며 “최소 20명이 사형 선고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AFP에 전했다.

이번 사형 선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달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 “외세가 조종한 산발적 폭동”이라며 강경 진압 방침을 밝혔다. 이달 초에는 이란 국회의원 272명이 “칼날과 총기로 인명과 재산을 해친 사람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과응보의 벌을 받아야 한다”며 시위대에 대한 사형 선고를 촉구했다. 신정일치(神政一致) 체제인 이란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입법·사법·행정 3권과 군부를 장악한 독재적 정치 체제로 운영된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지난 9월 이후 미성년자 49명을 포함, 총 318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이란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집계했다. 사형 선고가 잇따르고 경찰의 시위 진압이 강경해지면서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이란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2일 대국민 영상 팟캐스트를 통해 “대체 어떤 정부가 자국민에게 총격을 가하느냐”며 “우리는 이란 시민들 편에 서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란 혁명군과 정치 지도층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추가 제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1일 엘리제궁에서 마시흐 알레네자드 등 망명 중인 이란 인권운동가 4명을 만나 “이란 여성들이 이끄는 혁명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비판에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선동적이고 참견하는 비외교적 행태”라며 반발했다고 테헤란타임스는 보도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들은 11일 공동성명에서 “더 많은 사람이 이란에서 사형 선고가 가능한 혐의로 기소되고, 실제로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며 “시위 최전선에 있는 여성과 소녀들, 특히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타깃이 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들은 즉각적인 시위대 석방과 이란 정부의 인권침해 중단을 촉구했다.

유명 스타들도 이란 정부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이란 유명 여배우인 타라네 알리두스티(38)는 지난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벗고 긴 머리를 드러낸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서 알리두스티는 쿠르드어로 ‘여성, 삶, 자유’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이 문구는 숨진 아미니를 기리며 시위대가 사용하는 구호다.

이란 축구선수 사르달르 아즈문(27·레버쿠젠)은 아미니의 의문사에 대해 “이란의 여성과 민중을 죽이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이에 대한 처벌이 국가대표 제외라면 그것은 이란 여성 머리카락 한 가닥만도 못한 사소한 것”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했다. 몇 시간 뒤 그의 계정이 비활성화됐지만, 아즈문은 14일 발표된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 포함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 정부는 국내 위기로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축구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