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는 극심한 물가 상승과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 이젠 권위주의적 강대국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것은 정치·안보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을 방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30일 최종현학술원에서 ‘대한민국과 나토: 위험이 가중된 세계에서 파트너십 강화의 모색’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국과 나토의 협력 강화가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에 특정 원자재나 광물을 의존하는 것은 (한국을) 취약하게 만든다. 한국이 유럽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한국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적극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노르웨이·독일·스웨덴 등 몇몇 나토 동맹국은 교전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지한 정책에서 선회했다”며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경제적 및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지만,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어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시기에 대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통치자들이 평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란이나 북한 등으로부터 더 많은 무기를 모으고 있다”며 “우리는 긴 여정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토는 지난여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평화 협상 과정은 전장(戰場) 상황과 불가분 관계”이고 “푸틴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선의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적 지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 국민 70%가 독자적인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그는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한미 양자 간에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미국의 확장 억제 능력은 수십년 동안 나토 동맹국과 아시아·태평양의 다른 동맹국이 신뢰할 수 있고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을 접견,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북한의 무모한 도발 의지를 꺾기 위해 사무총장과 나토가 적극적인 역할을 지속해달라”고 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에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한·나토 간 사이버 방위, 신기술 등에서 협력 확대를 위해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오는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