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 시각) 영국 달링턴 지역을 방문한 리시 수낙 총리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YNA 연합뉴스

영국 역사상 첫 비(非)백인·인도계 총리인 리시 수낙 총리가 1일(현지 시각) 취임 100일을 맞았지만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낙 총리는 지난해 10월 25일 영국 정부 수장에 오르면서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의 감세 정책이 불러온 ‘금융 대란’을 성공적으로 잠재웠다. 하지만 연이은 내각 내 추문과 물가 상승,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특히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후회하는 ‘브레그레트(Bregret·브렉시트를 후회하는 정서)’가 확산하면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31일 “최근 정치 컨설팅 업체 레드필드앤드윌튼 조사에서 수낙 총리에 대한 부정 평가가 40%에 달한 반면, 긍정 평가는 25%에 불과했다”며 “이는 취임 직후보다 3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최악의 수치”라고 밝혔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 조사에서도 수낙 총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60%에 달했다. 총리 지지율 하락과 함께 보수당 지지율도 26%에 머물면서 야당인 노동당(48%)과 지지율 격차가 22%포인트에 달했다.

내각의 잇따른 추문이 지지율 하락의 첫째 원인으로 지목됐다. 수낙 총리는 지난 29일 너딤 자하위 보수당 의장을 전격 해임했다. 지난해 7월 재무장관 재임 시절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미납 세금 문제를 국세청과 합의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에는 개빈 윌리엄슨 내각장관이 과거 보수당 동료 의원과 고위 공무원들에게 욕설 문자를 보내고 폭언을 했다는 의혹으로 사퇴했다. 도미닉 라브 부총리 겸 법무장관도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가디언은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거짓말 의혹 등 윤리적 문제를 ‘저격’해 온 수낙 총리에겐 적잖은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국인을 계속 압박해온 생활비 급등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 유럽의 에너지 가격 하락세에도 영국의 1월 물가상승률은 10.5%로 여전히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BBC는 “식품 가격 앙등이 가장 큰 문제”라며 “지난해 12월 식품류 물가상승률이 16.8%에 달해 1977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전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공공 부문의 파업이 계속되면서 영국인들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간호사와 구급대원, 우체부, 철도 공무원 등 공공노조가 최근 100여 년 만의 최대 파업을 벌인 데 이어, 지금까지도 산발적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매체들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란 ‘브레그레트’가 확산 중”이라며 “수낙 총리가 이를 어떻게 수습해 나갈지가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유고브 조사에선 영국인 56%가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간 인디펜던트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5%가 “EU 재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원한다”고 답했다. 수낙 총리는 그동안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