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약을 투여했을 때 남성의 정자 운동성 비교한 이미지. 오른쪽은 sAC 억제제를 투여한 모습이며, 왼쪽은 대조군 / 웨일코넬의과대 유튜브

한번 먹으면 2~3시간 정자 활동이 멈추는 남성용 경구피임약이 개발됐다. 이 피임약이 상용화될 경우, 콘돔과 정관수술이 전부였던 남성 피임 시장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현지 시각) 미국 웨일코넬의과대에 따르면, 요헨 벅 약리학과 교수와 로니 레빈 교수 공동 연구팀은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약을 복용해 필요할 때만 정자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벅과 레빈은 수용성 아데닐릴 사이클레이즈’(sAC)라는 신호전달 단백질을 분리하는 실험 도중, sAC가 정자 운동에 관여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sAC가 부족하도록 유전자 조작한 쥐가 불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외에도 sAC를 부호화하는 유전자가 부족한 남성은 불임이지만 건강하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참고했다.

이런 연구들을 토대로 연구진은 sAC 억제제인 ‘TDI-11861′를 개발했다. 이 약을 수컷 생쥐에게 1회 투여한 결과, 정자가 2시간30분가량 운동성을 잃은 모습이 관찰됐다. 암컷 쥐의 생식 기관에서도 이 효과가 지속됐다고 한다. 3시간 뒤부터 정자는 운동성을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투여 24시간이 지나자 대부분 정자가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또 TDI-11861을 투여한 수컷 쥐는 암컷 생쥐와 정상적으로 짝짓기를 했다. 이 쥐가 52차례 짝짓기를 하는 동안 임신한 암컷은 없었다고 한다. 반면 sAC를 억제하지 않은 일반 수컷 쥐 집단에서는 짝짓기 한 암컷 쥐의 3분의 1이 임신했다.

sAC 억제제의 장점은 여성 피임약과 달리 호르몬을 조절하지 않는 점이다. 테스토스테론 저하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없다는 의미다. 아울러 기존 남성용 피임약은 생식능력을 회복하는 데 상당 기간이 걸리지만, sAC 억제제는 효과가 몇 시간 만에 사라져 피임이 필요할 때만 복용할 수 있다.

연구진 중 한 명인 멜라니 발바흐 박사는 “정자 운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몇 시간 안에 사라지기 때문에, 남성들이 일상에서 출산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BBC는 일부 전문가들을 인용해 " sAC 억제제가 성병까지는 예방하지 못 한다”며 “성관계 시 콘돔도 함께 사용하라”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