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현지 시각)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슈의 발리 사임 초투르 스타디움에 마련된 텐트촌. 규모 7.8 강진 전까지는 축구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에 흰색 이재민 텐트 200여 개가 들어섰다. 구조된 생존자보다 건물 잔해에서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이 자주 전해져 슬픔과 낙담이 가득한 현장에서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3세 꼬마부터 8~9세 어린이까지 10여 명이 텐트 안에서 간이 책상에 스케치북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 강진으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아이들이다. 텐트촌 아이들 중에는 부모와 형제, 친척 등 가족을 눈앞에서 잃은 경우도 상당수다. 집이 무너지고, 건물 잔해에 깔려 가족이 목숨을 잃은 참상을 직접 목격,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쥔 아이들 대부분은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을 그렸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알록달록 색칠하고, 간단한 글귀를 적기도 했다. 튀르키예 적신월사(赤新月社·이슬람권 적십자사)와 한국에서 파견된 대한적십자사 현장조사단원들이 아이들 곁에 앉아 이들의 행복했던 기억에 귀 기울였다. 5세 아자드는 “내가 바라는 것을 그려 넣는다. 그러면 꼭 이뤄질 것 같다”며 웃었다. 8세 소녀 엘라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우리가 더 강해질 때까지 함께해 달라”고 대원들에게 말했다.
텐트촌 아이들은 당장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들이 받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장기적으로 치유할 방안에 대해선 뚜렷한 해법이 없어 튀르키예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튀르키예 적신월사의 카힛 건 구호팀장은 “지진 피해를 본 이재민들, 특히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심리적 지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이날 “지진 피해 지역 11주(州) 중 카라만마라슈, 하타이를 제외한 9곳에서 구조 작업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강진 발생 13일 만에 대부분 지역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마무리한 것이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에서 4만6000명을 넘어섰다. 전날 지진 발생 296시간 만에 하타이 안타키아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40대 부부와 12세 소년 등 3명이 구조된 이후 추가 구조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