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몰도바의 친(親)서방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다는 의혹에 이어, 몰도바의 친러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합병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남서쪽 국경에 접한 지역으로, 러시아가 합병하면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오데사와 최근 수복한 헤르손 등 남부 요충지를 직접 위협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22일(현지 시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에 대한 몰도바의 국가 주권을 인정하는 2012년 포고령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구(舊)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몰도바 편입에 반대하며 독립을 선언한 몰도바 내 친러 분리주의 지역이다. 1992년에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몰도바 정부군과 내전까지 벌였다.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양측이 휴전 협정을 맺도록 중재했고, 병력을 파견해 추가적 무력 충돌을 막아왔다.
러시아는 2012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특별 지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몰도바의 주권과 영토 보전, 중립 지위에 기반해 분리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내용의 포고령을 내놨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합병하면 몰도바에 대한 주권 침해(침략) 행위로 받아들이겠다”고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대한 몰도바의 권리를 인정하고,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합병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몰도바 현지 언론들은 “이번 포고령 철회로 러시아의 트란스니스트리아 합병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어가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군사적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곳에는 약 2만t에 달하는 구소련 무기와 탄약이 보관돼 있다. 주둔 중인 러시아군도 수천 명에 달한다. 공식적으로는 1500여 명의 ‘평화유지군’이지만, 서방 정보기관들은 당장 전투가 가능한 5000여 명의 여단급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인 오데사와 거리가 60여㎞에 불과하다. 러시아군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통해 오데사를 기습 점령하면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지역은 러시아 수중에 떨어진다. 우크라이나가 내륙에 고립돼 흑해 진출을 차단당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합병해 동부와 남서부 양쪽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은 “우크라이나가 무인기(드론)와 로켓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했다”고 주장해 ‘침공 명분을 찾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