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인공지능(AI) 기술이 보이스피싱에까지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나 친척 등 가까운 지인의 목소리를 AI로 흉내 내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6일(현지 시각)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캐나다 앨버타에 사는 벤저민 파커(39)의 부모는 아들의 목소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파커의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범인은 “파커가 교통사고로 미국인 외교관을 숨지게 한 혐의로 수감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 심리 전까지 2만1000캐나다달러(약 2000만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범인은 파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는 파커의 음성을 불법으로 수집해 만든 ‘가짜’ 목소리였다. 하지만 파커 부모는 아들의 목소리가 맞는다고 확신해 비트코인으로 돈을 송금했다. 이날 저녁 ‘진짜 파커’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커는 범인이 어디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수집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내 음성 사서함에는 30~35초짜리 메시지가 등록돼 있다”며 “당신의 전화기에 등록된 음성 사서함 메시지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목소리를 위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독일의 한 에너지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목소리를 AI 기술로 흉내 내 22만유로(약 3억500만원)를 갈취한 것이다. 당시 범인들은 가짜 목소리를 이용해 영국에 있는 자회사에 “헝가리 납품업체에 한 시간 내에 대금을 지불하라”고 지시했다. 영국 자회사는 CEO와 똑같은 목소리에 속아 돈을 보냈다.

범인 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영국 자회사 대표가 목소리 톤 등에서 수상함을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미 돈이 헝가리, 멕시코 등 여러 국가를 거쳐 세탁된 탓에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