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광장. 이날 6개 야당으로 구성된 ‘6자 회의’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추대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케말 클르츠다로을루(75) 대표가 수천명의 지지자 앞에 섰다. 그는 강한 어조로 “흩어지면 죽는다. 평화와 형제애의 협치(協治)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야권 핵심 인사로 꼽히는 만수르 야바시 앙카라 시장, 에크렘 이마모글루 이스탄불 시장의 손을 잡고 번쩍 치켜들자 지지자들은 “클르츠다로을루”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오는 5월 대통령 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에게 맞설 야권 단일 후보로 이날 추대된 클르츠다로을루는 인도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1869~1948)를 닮은 외모로 유명하다. 벗겨진 머리와 콧수염 등이 간디를 연상시켜 ‘튀르키예의 간디’ ‘케말 간디’ 등 별명이 있을 정도다.
최근 지진으로 5만명 가까이 사망한 튀르키예에서는 5월 14일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른다. 당초 6월 18일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지진 전에 여당에서 투표율을 올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선거일을 앞당겼다. 6일 6자 회의에서 클르츠다로을루가 사실상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되면서 이번 대선은 에르도안과 클르츠다로을루의 양자 대결이 될 전망이다. 친(親)쿠르드 성향인 제2야당 인민민주당(HDP)은 이번 6자 회의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변화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받아들인다”며 연대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클르츠다로을루는 튀르키예 동부 도시 툰첼리에서 태어났다. 쿠르드계가 많이 거주하는 빈곤한 지역이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재무부와 국세청, 사회보장국 등에서 근무했다. 사회보장국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뒤 2002년 정계에 입문했다. 공무원 재직 당시에도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던 클르츠다로을루는 CHP를 이끌면서 집권 정의개발당(AKP) 거물 인사들의 비리 폭로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강진으로 부실 공사한 건물이 줄줄이 무너지자 그는 “이 사태는 정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며 정경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클르츠다로을루는 비교적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즉석 연설을 즐기며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이는 에르도안과 달리 항상 여러번 수정하고 검토한 원고를 준비한다. 이날 단일 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준비한 원고를 들고 나와 수락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야당 일각에서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말이 장황하다”며 클르츠다로을루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6자 회의의 한 축인 좋은당(IYI) 메랄 악셰네르 대표는 지난 3일 탈퇴를 선언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클르츠다로을루가 대중적 호소력이 약하다고 지적하며 앙카라 시장이나 이스탄불 시장 등 대중적 지명도가 있고 인기 있는 인물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르츠다로을루는 자신이 집권하면 튀르키예 정치를 의회주의로 다시 되돌려 놓겠다는 입장이다.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가는 에르도안 현 대통령과 차별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2016년 군부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국가 안보를 앞세워 야당 의원과 언론인, 공무원, 학자, 군인, 경찰 등 수천명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16년 이후 반대론자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 통치가 한층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기조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튀르키예 경찰은 지난달 지진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네티즌 등 78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모래알’ 같았던 튀르키예 야권은 지난달 남부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 이후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4만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거세졌고, 정권 교체론이 힘을 받으면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달 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는 에르도안이 49.8%, 클르츠다로울루 21.7%를 기록했다. 하지만 단일화에 뜻을 모은 야권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하면 에르도안에 육박하는 48.2%에 달한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1999년 지진으로 정권을 잡았던 에르도안이 24년이 지난 지금 지진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1999년 대지진 당시 정부의 미숙한 대처에 이어 IMF 경제 위기 사태까지 겹쳐 여당 지지율이 폭락하자, 청렴하고 강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등장했다. 그는 2001년 AKP를 창당해 총선에서 승리한 뒤 2003년 총리에 올랐으며, 2014년에는 대통령에 취임해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