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기술 이전 금지 조치에 네덜란드도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리에 슈라이네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은 8일(현지 시각) 의회 보고서를 통해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규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제를 여름 이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보고서는 이와 관련된 반도체 장비 기업(ASML)과 수출 대상국(중국)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중국에 판매해 온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露光) 장비가 새 규정의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DUV 장비는 불화아르곤(ArF)을 이용해 내는 빛(자외선)으로 반도체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를 그려내는 설비다. 얼마 전까지 반도체 업계의 주력이었던 10~40㎚ 미세 공정에 폭넓게 사용된다. 최근 대세로 부상한 10㎚ 이하 초미세 공정에는 빛의 파장이 더 짧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주로 쓰인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반도체 설비 업체인 ASML이 독점하고 있다. ASML의 EUV 장비는 이미 2019년부터 대중 수출 통제를 받아왔으나, DUV 장비는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DUV 장비까지 수출 통제를 하게 된 데 대해 “국제·국내 안보적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 대만에서 만든 고성능 비메모리 반도체 수입이 어려워지자, 이를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ASML과 일본 니콘의 반도체 노광 장비를 추가로 사들여 생산 능력을 확충하는 한편, 기술(장비) 자체를 국산화하려 노력 중이다. SMIC 등 중국 기업들은 현재 20㎚대 미세 공정에 사용 가능한 DUV 장비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이 무기 생산에 필요한 최신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이를 러시아에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장비 국산화를 위해 네덜란드와 일본 기업의 반도체 장비를 무차별적으로 베끼는 기술 탈취 행위가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도 이날 “중국이 우리 회사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ASML의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로이터는 “두 회사 모두 중국 내에 상당한 반도체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며 ASML의 장비 수출 중단으로 이들의 중국 사업이 영향을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40%와 20%를 중국에서 생산 중이다. 또 중국 내 수요 증가에 맞추기 위해 기존 생산 시설을 최신 공정으로 바꾸는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