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 총회에서 발언하는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시민자유센터’ 대표. /세계경제포럼

“저는 포로로 붙잡혔다 살아남은 수백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두들겨 맞고, 강간을 당하고, 생식기에 전기 고문을 당하고, 손톱이 뜯겨나갔는지를 얘기했습니다. 화성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현대사회에서 중세시대에 볼 법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자유센터(CCL)의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39) 대표는 13일(현지 시각)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한 본지 인터뷰에서 직접 조사한 러시아군의 잔혹한 범죄들을 전했다. 그가 2007년 설립한 시민단체 CCL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약 1년간 전쟁 범죄 사례 3만4000여 건을 수집·기록했다. 지난해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CCL은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벨라루스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랴스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CCL은 2014년부터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 반도와 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에 조사원들을 파견해 범죄 증거를 수집해왔다. 이 중 대부분은 사진과 영상,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다량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면서 “발전한 기술로 사진이 어디에서 촬영됐는지 알 수 있고, 영상의 진위 등을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는 시민 단체 20여 곳과 연합체 ‘푸틴 재판소(Tribunal for Putin)’를 만들어 수집한 증거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증언 중 ‘하얀 치마를 입은 사람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진술이 있다면 ‘하얀 치마’가 다른 진술에도 언급됐는지 검색해 교차 검증을 거치는 식이죠.”

CCL이 지난해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내에는 정부 청사나 군부대부터 호텔·기숙사·카페·음식점·공장 등 최소 79곳에 불법 구금 시설이 마련됐다. 이곳에 억류됐다 풀려난 우크라이나인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군인 86%와 민간인의 50%가 고문·가혹 행위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직접 인터뷰한 도네츠크 출신의 한 여성에 대해 들려줬다. “그녀는 임신한 상태에서 샤워 부스 크기의 지하실에 갇혀 플라스틱병으로 용변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아이는 태어날 권리가 없다’면서 쇠막대기로 그녀를 구타했습니다.” 그는 “이 사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도네츠크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며, 이젠 이러한 일들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사법 시스템은 수많은 사건과 소송으로 이미 과부하 상태”라고 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2007년에 시민 교육 단체인 ‘시민자유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2013년 벌어진 반독재 시위에서 불법 체포되거나 증거 조작으로 기소된 이들을 도우면서 법률 지원 단체로 발전했다.

전쟁 이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에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 새로운 재판소 설립도 추진해왔다. 최근 유럽연합(EU)도 네덜란드 헤이그에 러시아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하고 기소를 추진하기 위한 ‘국제 침략 범죄 기소 센터(ICPA)’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러시아는 체첸·몰도바·시리아 등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면서 “이제 러시아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