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16일(현지 시각) 유럽 산업의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 원자재법’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는 ‘탄소중립산업법’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 두 법안은 지난 11일 발표한 녹색 산업 보조금 지원책인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 워크’와 더불어 미·중과 미래 산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EU의 3대 산업 정책으로 꼽힌다.
EU 집행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핵심 원자재법 초안은 니켈·리튬·흑연·망간·구리·갈륨과 각종 희토류 등 자동차용 배터리와 풍력·태양광 발전 설비 제조에 필요한 총 16종의 핵심 소재를 ‘전략적 원자재’로 규정, 특정 국가(중국)의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65% 미만으로 떨어뜨리기로 했다. 현재 중국산 핵심 소재의 EU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이를 위해 새 원자재 공급선을 개발하고, EU와 비슷한 입장의 국가와 손잡고 ‘핵심 원자재 클럽’도 만들 예정이다.
이 법안은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중국은 자국 내 광산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 등 타국의 광산에서 캐온 핵심 광물들을 자국 내 시설에서 정련(精鍊)하고 재가공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의 경우 호주와 칠레가 각각 세계 시장의 47%와 3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지만, 이를 전기차용 리튬 배터리 제조에 쓸 수 있도록 가공한 수산화리튬은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약 80%를 차지한다. 특히 태양광 패널과 재생 에너지 발전기, 전기차 모터에 들어가는 희토류 소재의 경우 중국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희토류 무기화’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IRA에 대응하는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은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배터리,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8가지 기술을 ‘전략적 탄소중립 기술’로 규정하고, EU 내에서 이 기술들에 대한 유럽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4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신규 투자 허가 기간이 18개월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각종 보조금 지급 절차도 크게 간소화한다. 유럽 내 친환경 산업의 해외 유출을 막고 보호·육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탄소중립산업법은 녹색 산업 보조금 지원책(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 워크)과 짝을 이뤄 녹색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보조금 지원의 근거를 만들었다.
EU가 녹색 산업 보조금 지원책에 이어 핵심 원자재법과 탄소중립산업법 초안까지 내놓음에 따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밝힌 ‘그린딜(Green Deal) 산업 계획’의 3대 축(軸)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주요 외신들은 “재생 에너지에 기반한 탈(脫)탄소 경제로 대전환을 하는 세계 산업계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EU 등 글로벌 3개 경제의 본격적 경쟁이 막이 오른 셈”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르게 블록화하는 세계 경제의 트렌드와 더불어 보호 무역의 흐름이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