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하원 표결 없이 연금 개혁 법안을 밀어붙인 17일(현지 시각)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16일까지 평화적이었던 시위는 폭력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야당들은 연금 개혁 법안을 좌초시키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잇따라 제출했다. 그러나 연금 개혁에 우호적인 야당 공화당 의원 대다수가 불신임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을 전망이라 통과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앵포와 BFM TV 등 프랑스 주요 매체에 따르면 17일 파리, 마르세유, 낭트 등 24개 도시에서 열린 시위에 약 6만명이 참여해 “마크롱 하야” 등을 외치며 쓰레기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경찰은 18일 “공공질서가 어지럽혀질 심각한 위험이 있다”며 파리 콩코르드 광장과 이곳에서 이어지는 샹젤리제에서 집회를 금지했다. 프랑스 에너지 노조와 운송 노조, 교사 노조 등은 이번 주 중 파업을 결의했다.
프랑스 야당은 일제히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신임안은 20일 프랑스 하원 표결에서 하원 전체 의석의 과반수 동의를 받으면 통과된다. 프랑스 하원 의석은 총 577석이나, 이 중 4석이 공석이라 287표를 얻으면 과반이 된다. 이 경우 법안은 폐기되고 총리 등 내각은 총사퇴한다. 현재 야당 의석은 총 318석으로 절반이 넘는다. 좌파연합인 신민중생태사회연합(NUPES·뉘프)이 149석, 국민연합(RN) 88석, 공화당(LR) 61석, 중도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20석 등이다.
프랑스 언론 매체들은 그러나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금 개혁안에 우호적 입장을 보여온 공화당이 불신임안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17일 오전 상원 표결에서 연금 개혁안에 일제히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오후 하원 투표를 앞두고 공화당 하원 의원들 일부가 연금 개혁 법안 표결에 참여 않거나 반대할 것으로 알려지자, 불안감을 느낀 마크롱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해 정부 단독 입법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에리크 시오티 공화당 대표는 17일 “공화당 의원 대다수가 20일 하원의 불신임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른 총리 내각이 붕괴되고, 연금 개혁안이 폐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프랑스앵포는 “(불신임에 찬성하는) 공화당 내 반란표가 나오더라도 10표 정도에 그쳐 불신임 찬성표는 총 260석대 초반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신임안이 부결되면 연금 개혁 법안은 법률로 만들어져 공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