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셋째) 전 미국 대통령이 기소인부 절차를 위해 출석한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변호사들과 함께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트럼프는 이날 법정에서 검찰이 기소한 34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 것 이외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이날 저녁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나라에서 여태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며 맨해튼 검찰 등을 비판했다. /AFP 연합뉴스

4일 오후(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첫 재판이 시작됐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2016년 대선 직전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과 관련해 총 34건의 혐의를 적용한 공소장이 공개됐다. 뉴욕 검찰은 공소장에 첨부된 ‘사실진술서(statement of facts)’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생활 관련 폭로를 막기 위해 입막음 돈을 지급한 과정을 자세하게 적었다. 여기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주변 인물들이 사생활 관련 폭로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가 상세히 나온다. 이번 공소장 공개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7가지를 모아 정리했다. 이 내용들은 뉴욕 검찰이 작성한 것으로, 실제 사실인지 여부는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예정이다.

◇대선 출마 직후 ‘입막음 도원결의’

진술서에는 트럼프와 ‘입막음 도원결의’를 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트럼프의 ‘해결사’ 역할을 맡았다가 후일 배신한 마이클 코언 변호사와, 아메리칸 미디어 주식회사(AMI·'내셔널 인콰이어러’ 등을 발행하는 미디어 그룹)의 회장 데이빗 패커다. 이들은 2015년 6월 트럼프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직후인 그해 8월,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만난다.

이 모임에서 패커는 트럼프의 선거 운동에서 ‘눈과 귀’ 역할을 맡겠다고 했다. 트럼프에 관한 부정적 소식을 미리 찾아내, 언론에 밝혀지기 전에 코언 변호사에게 알려 미리 입막음하겠다는 것이었다. 패커는 또 트럼프의 선거 경쟁자에 관한 부정적 내용을 보도하기로도 합의했다.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절차에 출석한 뒤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 복귀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폭로 막으려 언론사 이용해 ‘취재 후 죽이기(catch and kill)’

이후 2015년 11월, 패커는 트럼프 타워의 문지기(doorman) 출신(디노 사주딘)이 트럼프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정보를 언론사에 팔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패커의 지시로 AMI는 문지기에게 3만 달러를 주고 독점 보도권을 사들였다. 일단 다른 언론에서 기사가 나오지 못하게 막은 뒤,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을 묻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AMI가 자체적으로 검증해본 결과 혼외자 루머는 가짜였고, 패커는 돈을 도로 돌려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코언 변호사가 대통령 선거일까지는 이슈화조차도 되지 못하도록 계속 입을 막을 것을 지시했고, 패커는 이를 따랐다.

대선을 몇 달 앞둔 2016년 6월에는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이 트럼프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나섰다. 트럼프와 패커, 코언은 수차례 회의 끝에 입막음 비용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AMI가 이 내용에 대해 독점 보도하는 대가로 수차례에 걸쳐 15만 달러를 맥두걸에게 넘겼다. 트럼프 타워 문지기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AMI는 비용 지불 내역을 회계장부에 허위 기재했고, 패커는 트럼프가 이 비용을 다시 돌려줄 것이라는 약속을 코언으로부터 받았다.

◇입막음 돈 준 유령회사 이름은 ‘해결 사무소’

진술서에는 트럼프와 코언이 ‘입막음 비용’의 용처를 숨기는 방법을 걱정하는 녹음본 내용이 있다. 대선 두 달 전인 2016년 9월 녹음한 파일엔 트럼프가 “(맥두걸에게) 얼마나 주면 돼? 15만이면 돼?”라고 했다는 등의 대화가 오갔고, 이후 코언이 유령 회사를 세워 맥두걸에게 수표로 돈을 지급한 과정 등이 담겼다. AMI가 맥두걸에게 먼저 지급한 15만달러를 다시 돌려줘야 하는데, 입막음용 돈임이 드러나지 않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녹음본에 따르면 트럼프는 코언에게 “15만달러를 현금이나 수표로 지급하자”고 제안했고, 코언은 이를 반대하며 유령 회사를 세워 ‘돈세탁’을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유령 회사 이름은 ‘해결 사무소(Resolution Consultants) 컨설팅’이었다고 한다. 유령 법인을 차린 후, 이 법인에서 AMI의 ‘독점 보도권’을 사들이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이후 대니얼스에게 약속한 돈을 줄 때도 같은 방법을 썼다. 이 때 코언이 새로 차린 회사의 이름은 ‘필수(Essential) 사무소’였다.

미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캐런 맥두걸이 2015년 트럼프와 함께 찍어 트위터에 올린 사진. /맥두걸 트위터

◇트럼프 “돈은 최대한 늦게 줘라”

트럼프는 또 다른 폭로자이자, 이번 기소 사건의 주인공 중 하나인 스토미 대니얼스에게는 코언이 직접 돈을 지급하게 했다. 코언을 통해 대니얼스에게 13만달러(1억 70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한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언에게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만 끌면 돈을 주지 않아도 될 수 있으니 최대한 지급을 늦춰라”고 지시했다.

만약 당선된다면 그 이후에는 대니얼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알려져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뉴욕 검찰은 이후 코언이 대니얼스의 변호인 등에게 최대한 돈을 주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다수 남겼다고 밝혔다.

◇'입막음’ 용도 감추려고 3배 넘는 돈 지출한 트럼프 재단

대통령 당선 직후 트럼프는 코언에게 대니얼스에게 대신 변제해 준 13만 달러에 대해 보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초 코언은 수고비 5만달러를 추가해 총 18만달러를 받아갈 예정이었다. 문제는 세금이었다. 코언이 ‘법률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아가게 되면, 50%의 소득세를 내야 했다. 트럼프 재단은 18만달러의 두 배인 36만 달러에다가, 추가 성과급으로 6만 달러를 더해 총 42만 달러를 코언에게 넘겼다. 입막음 돈 용도를 숨기기 위해 원래 금액인 13만 달러의 3배가 넘는 돈을 지출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하던 시절 마이클 코언 변호사.

◇트럼프, 구속된 코언에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

2018년 4월 미 FBI 등이 이 건에 대해 코언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기 시작했다. 코언의 폭로가 두려웠던 트럼프는 개인 변호사를 통해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의 변호사가 코언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당신은 (대통령에게) 사랑받았던 사람이다”, “우리와의 소통 채널은 열려 있을 것이다”, “푹 자라, 당신에게는 (당신을 빼내 줄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친구들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재단은 이후 코언에 대한 법률 자문 비용 지급을 돌연 중단했다. 배신감을 느낀 코언은 트럼프에게 완전히 등을 돌려 ‘트럼프 저격수’로 변신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한 여성 편력을 은폐하는데 일조했으나 이후 트럼프에 등을 돌린 데이빗 페커 AMI 최고경영자. 사진은 2014년 모습이다. /AP 연합뉴스

◇선거 승리 후 백악관 초청까지

트럼프의 ‘눈과 귀가 되겠다’고 알랑거렸던 AMI의 패커는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맥두걸과 트럼프의 관계를 함구했다. 이에 트럼프는 선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임기가 시작되기 전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패커를 만나 감사 인사를 표하며 그 자리에서 취임식에 초대했다.

트럼프는 같은 해 여름에도 패커를 백악관에 초청해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가 선거 기간에 도움을 준 일에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패커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트럼프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에 입을 열며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다. 배신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