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가 검게 물들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여러 관광지에서 ‘먹물 테러’를 벌여온 환경단체에 의해서다.
21일(현지시각)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현지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이탈리아어로 ‘마지막 세대’라는 뜻) 활동가 7명은 이날 “우리는 화석(연료)에 돈을 내지 않겠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트레비 분수에 들어가 식물성 먹물을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가 죽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트레비 분수는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1762년 완성된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이다. 로마의 랜드마크로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곳에 동전을 던지면 연인과 맺어진다거나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속설로도 유명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 ‘달콤한 인생’ 등에도 등장했다.
이런 명소답게 맑은 에메랄드빛을 냈던 분수대 안 물은 단체의 행동으로 순식간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주변 관광객들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고 일부는 욕설과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활동가들이 먹물이 든 주머니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 뿌려대는 모습이 공개됐다. 또 출동한 경찰에게 잡혀 끌려 나온 뒤 시위 물품을 압수당하는 장면도 찍혔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최근 이탈리아 북부를 강타한 홍수 피해를 계기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려고 이번 시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는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쏟아진 폭우로 14명이 숨지고 3만6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경지가 대거 침수됐고 수십억 유로 규모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이들의 기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로마 스페인광장 바르카치아 분수를, 이달 6일에는 로마 나보나광장 피우미 분수를 새카맣게 물들이고 “우리가 화석 연료 사용에 의해 비상사태를 겪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4일엔 로마 중심가에서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며 반나체 상태로 도로 점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시장은 이날 “우리의 예술 유산에 대한 이런 터무니없는 공격을 그만둬야 한다”며 단체를 비판했다. 이어 ‘시위에 쓰인 먹물은 분수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단체 측 주장에 대해서도 “30만ℓ의 물을 버려야 한다. 시간, 노력, 물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당국은 잇단 과격 시위에 강경 대응 방침을 선언하고, 문화유산·예술품을 훼손·파손할 경우 최대 6만 유로(약 8600만원)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승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