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육부 장관이 2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본부에서 대담을 갖고 있다./국토부

원희룡 국토교육부 장관이 2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의 콘라드 아데나워재단을 찾아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국토균형발전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어 이날 오후에는 독일의 중도 우파 성향 기독민주당(CDU)의 청년 조직인 ‘영 유니온’을 방문해 청년 정치 확대 등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한 전문가 자문 회의를 구성하고 출범 시키는 등 저출산 문제를 주요 의제로 꼽고 있다. 원 장관은 “인구구조와 국토 균형 발전 문제 등에 대해 독일도 무거운 과제로 생각하고 열심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며 “정책적인 측면에서 더 많이 교류하고 함께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원 장관은 지난 22일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 참석 차 폴란드를 찾았고, 이후 24~25일 진행된 OECD 국제교통포럼(ITF) 장관급 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독일연방공화국 초대 총리이자, CDU 주요 창당 인사인 아데나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공익 재단이다. 원 장관은 2012년 8월 이 곳에서 한 달간 방문 연구원으로 지낸 인연이 있다. 이날 원 장관의 대담 상대로는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싱크탱크 부서인 ‘애널리시스 앤 컨설팅’의 피터 피셔 볼린 본부장이 참석했다.

토론 중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피터 피셔 볼린(왼쪽) 애널리시스 앤 컨설팅 본부장/국토부

원 장관은 “출산 감소,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 이로 인한 여러 문제가 국가적 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본다”며 “인구와 국토균형 발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게 국토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고, 저희도 정책을 제대로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는 점, 서울의 대도시와 지방의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과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성격이 강한 데 이주민과 북한 통일 문제를 인구 정책 관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세 가지 문제를 짚었다.

이에 대해 피셔 본부장은 “독일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정책에 대해 조금 더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며 “독일의 총 인구수가 줄지 않는 것은 이민 정책 때문일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25세 이하 인구 중 직접, 혹은 부모가 이민 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 40%가 넘는다”고 했다. 이어 “60년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독일로 대거 초대하는 정책이 있어 이들이 뿌리를 내린 경우가 있었고, 독일의 지리적 특성상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많은 난민이 유입 됐는 데 이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통합하고 노동시장에 통합시키는 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반면 이민 정책에 있어 기술직, 전문직을 유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IT 전문가나 의료 분야 인력의 이민을 유도하려고 하는 데, 이들에게는 영어권 국가가 선호되는 게 사실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언어 장벽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피셔 본부장은 “연방뿐 아니라 주 단위로도 여러 가족 지원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 데, 경제적 지원이 직접 출산율에 효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매달 얼마를 지급한다고 해서 다음 해에 아이들이 더 태어난다 이런 효과는 아니라고 본다”며 “(오히려) 출산 후 다시 근로 시장에 진입하는 걸 쉽게 한다든지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담을 마친 뒤 피셔 본부장이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헬무트 콜 총리 관련 책을 원희룡 장관에게 전달하고 있다./국토부

이날 대담에 함께 참석한 나탈리 클라우저 인구 변화 정책 분석가는 “프랑스, 헝가리도 셋째를 낳으면 세금 혜택을 주는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출산율은 2명 이하”라면서 “가치관의 변화도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령화를 막지 못할 것이고 여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탈리는 또 “최근 독일에서 ‘새로운 지방에 대한 귀환’이라고 할 정도로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주거 비용을 이유로 지방으로 이주를 많이 하고 있다”며 “이 점을 고려 할 때 디지털 인프라와 교통 인프라 구축 해 지방의 잠재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산 후 재취업을 보장하는 정책과 문화가 정착되는 데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렸는 지를 묻는 원 장관의 질문에 피셔 본부장은 “독일에서도 정책 변화가 15년전부터 꾸준히 이뤄졌고,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아직까지 남성의 참여율이 훨씬 낮다”며 “독일에서 진행 중인 (일부 시간만 일하는 제도인) 파트타임 모델이 수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또 “독일에서도 아직 여성들이 파트타임 정책을 많이 이용 하는 데, 독일과 정서가 비슷한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남성들이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은 걸로 봐서 인식 변화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원 장관은 이날 오후에는 베를린에 위치한 연방 의회에서 영 유니온 측과 만났다. 이날 자리에는 요하네스 빈켈 영 유니온 연방 의장이 함께했다. 빈켈 의장은 논의에 앞서 “인프라와 모빌리티 분야에 있어서는 독일은 기획 단계에 있어 너무 복잡하고 과정이 이뤄지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많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은 독일보다 더 앞서나가고 있고, 이런 걸 배우고 싶다”고 했다.

토론 중인 원희룡 장관과 요하네스 빈켈(오른쪽에서 두번째) 영 유니온 연방 의장/국토부

이날 원 장관은 빈켈 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청년 정치 참여 확대와 청년 조직의 자율성 보장 방안 등을 놓고 토론했다. 빈켈 의장은 “현재 영 유니온의 회원 가입자는 9만명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조직 내 결정의 여러 단계에 직접 참여하고, 많은 전문 위원회에 참여해 연방 정책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또 “우리 입장을 CDU 전체 총회에 전달해 정책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하는 영향력이 있다”며 “이런 것들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빈켈 의장은 보다 실질적인 교류를 위해 올해 10월 진행되는 영 유니온 독일 총회에 한국 측 사절단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회원 1000명 가량이 1년에 한 번 모여 향후 나아갈 정책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날 대담에서는 디지털, 사회 문제 등 청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그룹을 만들어 교류하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제가 36살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청년 정치인으로 많은 기회를 얻었는 데, 2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정치가 그런 점에서 발전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며 “이걸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많이 갖고 있다. 더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많은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