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로마 퀴리날레궁을 찾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현지 시각) 86세 나이로 밀라노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2021년부터 골수 백혈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초 폐 합병증으로 입원해 45일간 치료를 받았고, 지난달 19일 병세가 회복되어 퇴원했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해 다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화려했던 만큼 스캔들과 논란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자수성가한 갑부인 동시에 좌절과 상실도 숱하게 겪은 인물이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인에게 그는 우스꽝스럽지만 처량한, 때로는 야유를 퍼부을 수 있는, 끊임없는 오락거리였다”고 평했다. 여러모로 논란이 많은 인물인 베를루스코니의 별세 소식에 이탈리아에선 지금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가 일고 있다.

1936년 밀라노에서 2남 1녀의 첫째로 태어난 고인(故人)은 밀라노대 법학과를 나와 건설업에 뛰어들어 밀라노 외곽 신도시 아파트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자신이 분양한 4000가구 대단지 아파트에 들어가는 케이블TV 서비스 사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텔레밀라노’라는 유선방송회사(SO)를 만들었다.

이후 미디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80년 이탈리아 최초 민영 TV ‘카날레 5′를 차렸다. 또 ‘이탈리아1′과 ‘레테4′ 등 2개 채널을 추가로 사들여 언론 재벌이 됐다. 1987년 산하 미디어 기업들을 합쳐 출범한 ‘메디아세트’는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 그룹이다.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인기 축구단 AC 밀란의 구단주도 지냈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2018년 그의 자산 가치를 80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했다.

6월 12일 사망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밀라노 인근 아르코레 자택 앞에서 한 여성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 영향력을 토대로 1994년 중도 우파 정당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FI)’를 창당, 정치에 뛰어들었다. 보수 성향 국가동맹·북부동맹 등과 손잡고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 최초의 우파 연정을 꾸렸고 창당 첫해에 총리직에 올라 당시 좌파가 대세였던 유럽을 놀라게 했다. 화려한 정치권 입문이었지만 정적에게 밀려 첫 임기는 9개월에 그쳤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콘크리트 지지’에 힘입어 재기를 거듭했고, 17년간 총리직을 총 세 차례 역임한 최장기 집권 총리(9년 2개월) 기록을 세웠다.

화려한 경력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뇌물과 횡령, 탈세, 성 추문 등 숱한 의혹에 시달리며 ‘부패 정치인’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1998년 전직 총리로는 최초로 마피아 연루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1년 미성년자 성 추문으로 구설에 올라 총리에서 물러났고, 2013년 탈세로 유죄 선고를 받아 상원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또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는 여성 비하 망언과 퇴폐적 파티 등의 추문으로 반복해 구설에 올랐다.

2018년 복권된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과 우파 연정에 나서 대승을 거두며 정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서지는 못했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도 그의 행보를 가로막았다. 결국 새 정부에서 아무 직함도 맡지 못했다.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는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했고, 또 미워했다”며 “그가 이탈리아 정치와 경제, 스포츠, 미디어 등 분야에서 이탈리아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