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청혼 허례허식 논쟁을 촉발했던 사진. /블라인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의 ‘청혼 허례허식’을 조명했다. 결혼율 및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청혼 과정부터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15일(현지 시각) 지면 1면 하단에 ‘결혼식 전 비싼 장애물: 4500달러짜리 청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한국의 ‘비싼’ 청혼 문화를 조명했다. 그러면서 하루 숙박비가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호텔에서 명품 가방과 주얼리 등을 선물하는 게 일반적인 청혼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WSJ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청혼을 받았거나, 할 예정인 한국인들의 사례를 전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오모씨는 최근 국내 고급 호텔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이 청혼을 하기 위해 오씨 남자친구가 쓴 금액은 수백만원. 호텔 숙박비만 약 150만원이었다. 아예 청혼을 위해 마련된 패키지로, 여기에는 꽃 장식과 샴페인 등이 포함됐다. 오씨는 ‘Marry Me’ 풍선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파란색 티파니 쇼핑백과 샴페인도 사진 속에 등장했다.

오씨는 “누구나 호텔 프러포즈를 선호한다. 이는 모든 여성의 꿈”이라고 했다.

또 다른 회사원 하모씨는 최근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 하는데 총 570여만원을 들였다. 마찬가지로 호텔을 꾸민 뒤 비싼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호텔에 총 3대의 카메라를 두고 청혼 과정을 찍은 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하씨는 “솔직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면서도 “근데 여자친구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고 했다.

1면 하단에 한국 청혼 문화에 대한 기사를 실은 WSJ. /WSJ
WSJ는 1면에 이어 11면에서 한국의 청혼 문화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WSJ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청혼 계획을 늦추는 사례도 있었다. 김모씨는 “여자친구가 호텔에서 샤넬 가방과 함께 프러포즈 받은 친구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다”며 “머릿속으로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부터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당초 올여름으로 계획했던 청혼을 연말로 미뤘다. 김씨는 “이 정도면 저축할 시간이 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한국 프러포즈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반응은 기혼자와 미혼자로 갈렸다. 미혼자들는 “샤넬백을 살 여유가 있는지, 프러포즈가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고, 기혼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청혼으로 쓴소리를 듣게 된다”고 했다.

호텔에서 고가의 선물을 주며 청혼하는 방식이 유행처럼 자리잡자, 국내 호텔들을 발 벗고 관련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시그니엘 호텔은 꽃 장식과 샴페인 등이 포함된 ‘영원한 약속’(Eternal Promise)라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57만원으로 상당히 고가지만, 월평균 38회 예약이 이뤄질 정도로 인기다. 특히 봄에 가장 수요가 많다고 한다. 콘래드 호텔은 하트 모양의 케이크와 꽃, 와인이 포함된 ‘올 포 러브’(ALL FOR LOVE) 패키지를 출시했다.

직장인 하모씨는 청혼하는데 총 570여만원을 들였다. /인스타그램

실제로 청혼 허례허식은 국내에서 지속해서 도마 위에 오르는 주제 중 하나다. 지난 3월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불거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회사원이 호텔 객실을 꽃과 조명, 그리고 샤넬, 루이뷔통, 디올, 티파니, 쇼파드 등의 명품 브랜드로 한가득 채운 뒤 “프러포즈 대성공”이라는 글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당시 네티즌 사이에서는 ‘과하다’와 ‘개인의 자유’ 등 의견이 갈렸다.

WSJ는 “한국 결혼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큰 비용이 드는 호화로운 호텔 프러포즈는 결혼율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커플들에게는 압력을 가하는 웨딩 트렌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