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처럼 전염성 높은 호흡기 질환보다 독감에 대비하는 데 집중했던 건 실수였습니다.”
19일(현지 시각) 영국 ‘코로나19 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코로나와 같은) 높은 전염성과 무증상 전파에 대해 더 많은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실패(failure)”라고 말했다. 그는 “사스·메르스·에볼라 같은 다른 질병 확산에 대비했다”면서도 코로나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긴축 경제 정책으로 보건 예산이 깎여 코로나 대응이 부실해졌다’는 노조 등의 지적에 대해서는 “경제가 강한 만큼, 보건 시스템은 강해진다”면서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영국 보수당 소속 캐머런은 10년 전인 2010~2016년 총리로 재직했다. 이날 조사위는 퇴임한 지 7년 된 전직 총리를 불러다 ‘당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대비했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다. 코로나는 같은 당 소속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임기(2019년 7월~2022년 9월) 도중에 발생했다. 캐머런에 이어 2016~2019년 재임한 같은 당 테리사 메이 전 총리와 현 리시 수낙 총리까지 총리 출신만 총 4명이 출석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은 “캐머런은 처음으로 조사위 청문회에 출석한 정치인”이라며 추가 소환을 전망했다. 조사위는 오는 2026년까지 활동하며 코로나 관련 규명과 정부에 대한 권고들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조사위는 캐머런 내각에서 일했던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과 제러미 헌트 전 보건장관까지 불러다 의견을 듣기로 했다. 또 코로나 대유행 당시 정부의 수석 의료고문을 지낸 크리스 위티와 수석 과학고문이었던 패트릭 밸런스 등이 줄줄이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올해 영국 전역에서 조사위 주도로 보건 전문가 등이 참가하는 공개 청문회를 비롯해 각종 조사·심문이 예정돼 있다. 이를 통해 영국의 지난 팬데믹 대비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당시 정부의 의사 결정에 대해 분석한다. 팬데믹 위기가 영국 의료 보장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미친 영향도 점검하기로 했다. 2020년 12월 백신이 출시될 당시 정부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조사한다.
영국은 현대 의학의 본고장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개발하는 등 발 빠른 코로나 대응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영국 내에서 22만명 이상이 코로나로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20년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9.8%였다. 급기야 코로나 거리 두기 와중에 정부 각료들이 집단으로 음주를 했다 발각된 ‘파티 게이트’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이에 대한 조사가 가능했던 건 2005년 초당적으로 제정한 ‘조사위 법’을 통해 자체 보고서 생산과 증인 소환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코로나 실패로부터 배우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날 청문회를 연 코로나19 조사위는 2021년 5월 재임 중이던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코로나 관련 공개 조사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만들어졌다. 존슨은 “위기의 모든 단계에서 교훈을 배우겠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현미경 아래 두겠다”며 독립성을 약속했다. 조사위 의장으로는 전직 판사였던 배러니스 핼릿을 직접 임명했다.
조사위는 출범 초기부터 정부의 코로나 대응 실패를 강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영국 하원에서도 2021년 10월 ‘정부가 팬데믹 초기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국가 최악의 공중보건 실패였다’는 내용의 150쪽 분량 보고서를 내놓았다. 영국 감사원도 같은 해 11월 ‘정부가 봉쇄 조치를 단행했지만 혼란에 빠진 국민을 보호할 세부 계획은 부족했다’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코로나 위기 당시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 이슈 등이 진행 중이어서 코로나 대처가 더 부족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조사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보수당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몰아세운다”는 지적도 한다. 이에 대해 조사위는 “전부 국민에게 공개하는 활동을 통해 투명하게 논의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