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밤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탱크를 싣고 떠나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모습을 주민들이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바그너 그룹은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데 이어 모스크바로 향하다가 러시아 정부와 극적인 합의로 철수를 결정했다./AFP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은 24일(현지 시각) 무장 반란을 개시한 지 채 만 하루가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부터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은 “우리 전사들은 지난 24시간 동안 1000㎞나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고 자랑했다. 러시아군은 전격전(電撃戰·기동 돌파 작전)을 연상케 하는 바그너 그룹의 ‘쾌속 진격’을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그너 그룹은 이날 오전 7시경 로스토프나도누의 러시아 남부군관구 사령부를 접수한 뒤 본격적인 북상을 시작했다. 장갑차와 병력 수송차, 탱크를 실은 트레일러로 이루어진 대규모 호송대가 러시아 남부와 모스크바를 잇는 M4 고속도로를 따라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들은 모스크바에서 500㎞ 떨어진 보로네시주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 주도인 보로네시에 입성했고, 몇 시간 후에는 모스크바와 350㎞ 거리의 리페츠크주까지 도달했다.

그래픽=김성규

이 과정에서 진격로에 있었던 러시아군은 거의 대응을 하지 못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을 통해 “로스토프나도누를 접수하면서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다”며 “우리가 나타나자 장병들이 길을 비켜줬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뒤늦게 항공우주군 소속 전투 헬리콥터와 항공기를 출격시켜 이들을 막으려 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러시아군은 바그너 그룹의 지대공 미사일에 총 6대의 전투 헬기와 항공관제기 1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이 이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이 지역(남부군관구)의 핵심 부대가 모두 우크라이나에 투입되면서 징병된 병사들로 구성된 보안군과 방위군만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현재 러시아 영토에 남아 있는 보안·방위군 병력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바그너 용병과 맞설 능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에 도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바그너 그룹은 보안·방위군에 비해서는 전력이 강하지만, 모스크바를 지키는 푸틴의 친위부대 5만명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더타임스도 “모스크바 주변에는 제4근위 탱크사단과 제2근위 기동소총사단 등 정예 부대들이 겹겹이 배치돼 있다”며 “이들은 증원군이나 공중 전력을 제외해도 이미 전력면에서 바그너 그룹을 능가한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이 이날 저녁 모스크바까지 200㎞를 남겨놓고 철수를 결정한 것도 이런 현실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