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탄 속에 수많은 자탄이 들어있는 집속탄의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이 무차별적 살상력을 지닌 집속탄(集束彈·cluster bomb)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지원이지만,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낼 수 있는 무기란 점에서 국제 인권 단체들은 물론이고, 영국·캐나다·뉴질랜드·스페인 등 동맹국들도 반대하고 있다. 오는 11~12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는 “핵 아마겟돈(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전쟁)을 촉발”하는 결정이라고 협박 섞인 비난을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7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에 대한 8억달러(약 1조400억원) 규모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하면서 “이중 목적 개량 고폭탄(DPICM)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DPICM은 모(母)폭탄이나 포탄이 공중에서 폭발하면 공중에서 수백개의 자탄(子彈·새끼 폭탄)이 흩뿌려져 넓은 범위의 적군 병력과 전차·장갑차 등 장비를 손상시킬 수 있는 집속탄의 일종이다.

‘강철비’를 뿌리는 확산탄으로 불리기도 하는 집속탄은 불발률이 높고, 불발한 자탄이 지상에 남아 있다가 전쟁 후에도 민간인을 살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010년 유엔 차원의 ‘집속탄 금지 협약’(CCM)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123국이 가입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 등 미국의 가까운 동맹도 여기 포함돼 있다. 다만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는 이 협약에 가입한 적이 없다. 남북한과 이스라엘 등 분쟁 지역 국가들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탄약이 떨어져 가고 있다”며 “국방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우리(미국)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155㎜ 포탄을 확보할 때까지 과도기 동안에만 이(집속탄)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저지할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다. 그들(우크라이나)에게 이것(집속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처음 공격할 때부터 집속탄을 사용해 왔다”며 “러시아 집속탄의 불발률은 30~40%지만 미국이 제공할 집속탄의 불발률은 훨씬 더 낮은 2.5%”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판을 완전히 비껴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미국의 집속탄 지원 결정 발표 하루 전날인 6일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모두 집속탄을 사용해 수많은 민간인 사망자와 중상자를 발생시켰다”며 비판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8일 기자들에게 “(영국은) 집속탄의 생산이나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이며 그 사용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9~13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 첫 방문지로, 수낙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10일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는 “뉴질랜드는 우크라이나에서 집속탄이 사용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점을 백악관에 알렸다”고 말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의 정당한 방어는) 집속탄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캐나다 정부는 “우리는 집속탄 금지 협약의 보편적 채택을 권장하는 협약상의 의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완곡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8일 텔레그램을 통해 “그(바이든 대통령)가 심각한 치매를 앓고 있는 아픈 노인네 내지는 죽어가는 할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집속탄 지원 결정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또 바이든 대통령이 “핵 아마겟돈을 촉발해 인류의 절반을 그와 함께 저세상으로 데려가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전쟁 초기부터 전술핵 사용을 위협해 왔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미국의 집속탄 지원에 맞서 또 한 번 전술핵 카드를 꺼내 보이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