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고양이가 ‘조류’(鳥類) 인플루엔자에 걸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간과 가까운 포유류의 잇딴 조류 독감 감염’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경고를 낸 상황에서다. 국내 방역 당국도 “사안을 엄중하게 본다”는 입장이다. 박쥐가 유력한 기원(起源)으로 지목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이어, 인류를 위협할 또 다른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양이 AI’ 사례 서울서 잇따라 발생
한달 전, 서울 용산의 한 사설 고양이 보호시설에서 고양이 38마리가 이틀새 호흡 곤란 등을 겪다가 떼죽음을 당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시설 관계자가 7마리의 시료를 체취해 동물병원을 방문했는데, 감정기관-수의과대학-농식품부로 이어진 조사 끝에 5마리 시료가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 양성 반응 판정을 받았다.
폐사한 나머지 고양이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전 사체가 화장된 탓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시료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관악구의 또 다른 민간 동물 보호소에서도 고양이 11마리 중 4마리가 AI 의심 소견을 받고 정밀 검사를 받는 중이라고 서울시가 31일 밝혔다. 1마리는 호흡기 증상을 겪던 끝에 숨졌고, 살아있는 3마리에서도 AI 항원이 검출됐다. AI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시‧구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시설에 있는 개 57마리와 고양이 45마리,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AI 전수 검사를 실시했고, 여기서는 양성 판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시 동물보건과 관계자는 이날 조선닷컴에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이 AI 감염된 사례가 드물긴 하지만 있다. 주로 감염된 야생 조류, 가금류를 직접 접촉했을 때 드물게 그런 일이 발생하는데 고양이로부터 사람에게 온 사례는 현재로서는 보고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바이러스라는 건 어떤 식으로 이렇게 진화를 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것도 단언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방역당국은 “AI 바이러스는 주로 감염된 조류 등의 분변, 분변에 오염된 물건 및 사체 등을 손으로 접촉한 후에 눈․코․입 등을 만졌을 때 전파될 수 있다”며 “야생조류, 가금류, 고양이 등 사체를 발견해도 만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WHO “포유류 조류독감 발병 급증”…인간 감염 가능성 경고
전세계적으로 포유류가 AI에 감염되는 사례가 늘면서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포유류 조류독감 발병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로서는 사람 간 전파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변이로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한다면 인간 감염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WHO는 지난 12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포유류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동물과 인간에게 더 해로울 수 있는 신종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비 브라이언드 WHO 글로벌 감염 대응국장은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쉽게 전염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런 경향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바이러스가 진화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말하는 AI 바이러스는 H5N1이다. H5N1 바이러스는 1996년 중국 광둥성의 거위와 오리 농장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2020년 새로운 변종이 등장하면서 발병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조류 이외의 야생동물에서 22건의 감염이 보고됐다. 페루에서는 약 3500마리의 바다사자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폐사했으며, 미국에서는 퓨마, 곰, 너구리 등 포유류에서 H5N1이 검출됐다.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 또?…공포 확산
실제로 지난 2월 캄보디아에서는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된 11세 소녀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당국이 이 소녀와 접촉한 12명에 대해 검사한 결과, 소녀의 아버지에게서도 조류독감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렇다 보니 코로나19처럼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또 다시 나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다. WP는 “AI 바이러스가 사람간 전파가 가능한 바이러스와 결합해 쉽게 전염되는 새로운 변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짚었다. 이어 “대부분의 새로운 병원체는 동물에서 유래한다”며 “예를들면 박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근원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코로나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중국 연구시설에서의 유출설과 박쥐를 매개로 한 자연 전파설, 이 두 가지가 가장 유력한 가설로 제시됐다.
지난달 기밀 해제된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국장실(ODNI)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기관들은 코로나가 중국 우한(武漢)의 연구시설에서 유래했다고 볼 직접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내 정보기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NIC)와 4개 정보기관은 바이러스 자연발생설에 무게를 둔 한편 CIA 등 2개 정보기관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