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예술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브릭 레인’ 담벼락이 중국 공산당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문구들로 뒤덮였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비판 글귀를 덧붙여 쓰면서 예술의 거리는 순식간에 이데올로기 논쟁의 장으로 변했고, 결국 지역 의회는 담벼락을 흰색 페인트로 칠해버렸다.
7일(현지 시각)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 주말인 5∼6일 사이 브릭 레인의 한 벽면에 중국 공산당의 12가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 새겨졌다. 부강(富强)·민주(民主)·문명(文明)·화해(和諧)·자유(自由)·평등(平等)·공정(公正)·법치(法治)·애국(愛國)·경업(敬業)·성신(誠信)·우선(友善) 등이다. 누군가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도구로 쓰이는 문구를 써놓은 것이다.
이 같은 문구들은 특히 빨간색 스프레이로 적혀 이질감을 더했다. 문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담벼락을 흰색 페인트로 뒤덮어 버린 탓에, 기존 벽에 그려져 있던 알록달록한 벽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루아침에 브릭 레인의 상징과도 같았던 벽화는 사라지고, 중국 선전 문구가 자리 잡으면서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선전 문구 주변에 “중국에는 자유가 없다” “공산주의 꺼져” 등을 적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판하는 스티커를 붙인 이도 있었다.
비판은 온라인으로도 확산했다. 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선전 문구를 스프레이로 덮어버리는 모습을 인증하는 영상이 퍼졌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선전 문구 낙서는 예술을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자기들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벽에 있던 오래된 작품을 덮어버린 건 그들이 믿는 사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증명한다” 등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 정부가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직접 자금을 댄 것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인권 단체 ‘홍콩 워치’의 베네딕트 로저스 대표는 엑스에 “증오스러운 중국 정권의 선전 구호로 브릭 레인을 훼손한 깡패들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적었다.
일부 중국인도 이번 일은 충격적이라는 입장이다. 중국에서 자랐다는 한 시민은 AFP통신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이 문구를 외워야 했던 저와 친구들에게 이 일은 충격적”이라며 “이 문구는 거의 세뇌 코드와도 같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선전 문구를 새긴 장본인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중국인 왕한정씨는 인스타그램에 “다른 환경을 논의하기 위해 정치적 요소를 ‘외투’로 사용했을 뿐 정치적 의미는 별로 없다”고 했다. 왕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살해 협박 등 각종 위협을 받았다”며 “(선전 문구는) 중국의 목표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공통된 목표로,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
한편 해당 거리를 관할하는 타워 햄릿 의회는 ‘원치 않는 불법 낙서’라는 근거로 담벼락을 흰색 페인트로 덮어버렸다. 현재 빨간색 중국 선전 문구와 이에 반대하는 검은색 스프레이 낙서 등은 사라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