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이 세계 곳곳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대기 평균온도가 급상승, 알프스 빙하와 만년설이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또 다른 경고가 나왔다. 프랑스에선 8월 하순 닥친 영상 40도대 폭염으로 관광지가 많은 남프랑스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미국에선 84년 만에 서부 캘리포니아에 허리케인이 엄습, 큰 피해를 낳고 있다.
스위스 기상청은 21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위스 상공의 빙점(氷點) 고도가 지난 20~21일 밤 사이 해발 5299m까지 올라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종전 최고기록인 지난해 7월 25일 5184m를 불과 1년 만에 115m나 경신한 것이다. 현지 매체 르마탱은 “지난해 기록도 1995년 기록(5117m)을 27년 만에 깬, 매우 이례적 수치였다”며 “최근 몇 년 새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 온도 상승이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빙점 고도는 기온이 0도 이하로 내려가는 높이다. 지구 대기권의 맨 아래(대류권)에선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표면의 복사열이 약해지는 탓에 기온이 떨어진다. 스위스의 여름철 빙점 고도는 통상 해발 3000∼4000m 부근이었다. 이 때문에 몽블랑(4809m)과 마테호른(4478m) 등이 있는 알프스 산맥 윗부분은 일년 내내 빙하와 만년설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 기상청은 “빙점 고도 상승으로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알프스에서는 이미 눈과 빙하가 녹으면서 수십년 전 실종됐던 등반가와 스키 행락객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스위스 빙하감시센터는 “2100년이면 알프스 빙하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스페인 등을 덮쳤던 유럽 폭염은 프랑스로 옮겨갔다. 프랑스 기상청은 이날 론과 드롬, 아르데슈, 오트루아르 등 중남부 4개 주에 ‘폭염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총 4단계 경보 중 가장 높은 단계다. 프랑스는 지난달만 해도 잦은 비로 상대적으로 선선한 여름을 보냈으나, 뒤늦게 폭염이 닥쳤다. 프랑스 기상청은 “론 지방의 기온은 42~43도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폭염으로 남서부 발랑스 골페슈 원전의 재가동이 미뤄지는 일도 벌어졌다. 이 원전은 최근 보수 작업을 마치고 20일부터 다시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냉각수를 공급하는 가론(Garonne)강의 수온이 급격히 오르자 가동 개시일을 25일로 늦췄다. 이 원전은 지난해 7월에도 폭염과 가뭄으로 가론강의 수온이 오르면서 가동률을 낮춰야 했다.
미국에선 역대 최악의 폭염과 산불에 이어 허리케인까지 불어닥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남부와 네바다주 서남부에선 21일 허리케인 ‘힐러리’가 상륙, 폭우 피해가 속출했다. 힐러리는 현재 열대성 폭풍으로 약해졌지만, 사람이 쓰러질 정도인 시속 105㎞(초당 약 29m) 풍속을 유지하며 많은 비를 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허리케인이 캘리포니아에 상륙한 것은 1939년 이후 84년 만”이라며 “기후변화 때문에 허리케인이 강력해지고 더 오래 지속되며 많은 피해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홍수 대비에 취약한 사막 도시들이 큰 피해를 당했다. 소노란 사막의 휴양 도시 팜스프링스에선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에 달하는 81㎜의 비가 내려 도로가 침수되고 차량들이 고립됐다. 인근 커시드럴시티엔 진흙과 물이 1.5m 높이로 차올라 시 당국이 불도저로 진흙을 치우고 46명을 구조했다. 모하비 사막의 ‘데스 밸리’에도 역대 최고인 560㎜의 비가, 샌디에이고에도 역시 사상 최고인 460㎜의 비가 하루 새 내렸다. 미국 기상청은 “네바다 사막으로 이동 중인 힐러리가 22일 하루 2년 치 강수량에 해당하는 비를 뿌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