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한국 문화원 특별전시관에서 김세용 명장이 ‘투각(透刻) 기법’으로 만든 청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자 분야 첫 명장인 그는 “외국인에게 작품 하나만 추천한다면 ‘국화문 시리즈’를 꼽겠다”고 했다. /윤주헌 특파원

지난 23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와 이스트 57번가 교차로에 위치한 뉴욕 한국 문화원. 약 198㎡(60평) 규모 특별 전시관에서 푸른빛 도자기들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황토색 개량 한복을 입은 이가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2002년 대한민국 349호 명장이 된 세창(世昌) 김세용(77)씨다. 그는 우리나라 첫 청자 분야 명장이다. 달라이 라마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소장품에 그의 작품이 포함됐다. 1966년 도예에 입문한 그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법으로 유명하다. 특히 다양한 청자 기법 중 재료를 완전히 뚫거나 도려내 표현하는 ‘투각(透刻) 기법’으로 청자를 만든다.

김 명장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자식 같은 청자를 들고 미국에 왔다. 평소 ‘언젠가는 내가 만든 작품을 해외로 가지고 나가 세계인들에게 청자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2019년 11월, 아들 김도훈 박사(재료공학)가 김 명장의 작품 80여 점을 특수 포장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왔다. 원래는 이듬해 6월 로스앤젤레스(LA) 한국 문화원에서 첫 전시를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계획이 멈춰섰다.

1999년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안동시장 부부가 김세용 명장의 작품을 전달하고 있다. /김세용 명장 제공

명장의 작품은 특수 포장된 채로 3년 넘게 창고에 보관되다 올해 들어서야 빛을 보게 됐다. 지난 4월 6일부터 5월 26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머켄텔러 문화센터에서 마침내 전시를 할 수 있었다. 김 명장은 한국 청자의 아름다움을 미국 전역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미국 서부뿐만 아니라 동부에서도 전시를 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다. 뉴욕 한국 문화원에 도움을 요청해 장소 제공을 약속받았고, 이번에 ‘십장생 청자 시리즈’ ‘국화문 이중투각’ 등 총 50여 점의 작품으로 전시회 ‘천 년의 이야기’를 열게 됐다.


십장생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청자다. 작업 기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다 완성된 것 같아서 불에 구우면 금이 가거나 터지거나 주저 앉기도 해 10년이 지나서 완성했다고 한다. /윤주헌 특파원

작품을 옮길 때 필요한 특수 포장비를 비롯해 전시회를 위한 모든 비용은 명장과 그의 아들이 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청자를 알리는 전시회를 연다고 여러 공공기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개인 작품 전시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청자를 알리고 싶어 사재(私財)를 털어 전시를 시작했고, 코로나로 전시회가 지연되며 비용이 불어나 현재까지 5억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비용을 대기 위해 명장의 이천 작업실을 담보로 대출받았고, 아들 전세금도 빼야 했다.

지금도 명장 가족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숙박 공유 서비스(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달 10일부터 시작해 31일까지 열리는 뉴욕 전시회는 막바지에 달했지만 전시장을 찾는 이는 기대보다 적은 상태다. 전 세계 유명 작품이 앞다퉈 선을 보이는 뉴욕에서 주목받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 명장은 “(관람객이 적어) 물론 속상할 수도 있지만 고려 시대 선조들은 끝없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고려청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십장생 시리즈는) 10년간 실패 끝에 만든 청자입니다. 바보 같은 사람만 인내하며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청자를 알리는 게 힘들고 바보 같아 보여도 이런 노력이 모여야 세계가 청자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