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비행기 사고로 숨진 러시아 민간 용병단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장례식이 엿새만인 29일 오후 4시(현지시각) 그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공동 묘지에서 비공개 가족장으로 열렸다. 그는 이곳의 아버지 묘 바로 옆에 나란히 묻혔다.
프리고진의 장례식 일정은 지난 27일 러시아 연방 수사 위원회가 비행기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중 프리고진이 있음을 유전자 감식으로 최종 확인한 직후 정해졌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영웅 훈장’을 받아 원칙상 국장을 치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장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9일 오전까지도 장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혼선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바그너그룹 대변인이 텔레그램에 “프리고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그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로호프스코예 묘지로 가라”는 글을 남기면서 최종 확인됐다.
프리고진의 장례식은 조촐한 가족장으로 치뤄졌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보도했다. 그러나 만약의 소요 사태에 대비해 러시아 방위군 대원들이 묘지 주변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경비를 섰고, 방문객들을 일일히 검문하고 안내했다. 기자들의 묘지 내 입장은 철저히 차단됐다.
AP통신은 묘지 밖에서 본 광경을 근거로 “꽃으로 덮인 그의 무덤 위에는 나무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었으며, 주변에는 러시아 삼색기와 검은색 바그너그룹 깃발이 세워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현지 인터넷 매체 MSK1은 “장례식은 오후 4시 정각에 열렸으며, 프리고진은 아버지의 묘 옆에 묻혔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은 지난 6월 23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러시아 군부 고위층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무장 반란을 일으켰고, 모스크바 남쪽 200㎞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를 통해 ‘반란 혐의 기소 중단’을 조건으로 하루 만에 반란을 멈췄다.
그는 이후 벨라루스와 러시아, 아프리카를 오가며 바그너그룹의 벨라루스 진출 및 아프리카 신사업을 진두 지휘,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두 달만인 지난 23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개인 전용기를 탔다가 승무원 및 승객 9명과 함께 추락사했다. 서방 언론과 정보 기관들은 그가 탔던 제트기에 폭탄이 설치됐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4일 프리고진의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으나, 이날 장례식엔 참석하지 않았다. 크렘린궁은 이날 오전 “푸틴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프리고진이 벌인 무장 반란을 “반역”이자 “러시아의 뒤통수를 친 것”이라며 거세게 비난했었다. 서방 정보 기관들은 프리고진의 사망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