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어디로 가? - 지난 9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이민자 숙소로 쓰이는 한 호텔 앞에서 유모차를 끄는 여성을 한 어린이가 따라 걷고 있다. /EPA 연합뉴스

10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 그랜드센트럴역 인근 루스벨트 호텔 앞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분홍색 책가방을 메고 부모와 함께 서 있었다. 옷가지를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든 부모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인근에서 이들과 비슷한 행색의 무리가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스페인어로 대화했다. 2022년 초부터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해 중남미에서 16만여 명이 뉴욕으로 넘어왔다. 진보 성향이 강한 뉴욕시는 처음엔 “어서 오라”며 반겼다.

시 예산으로 호텔 방을 확보해 갈 곳 없는 이민자 거처까지 마련해줬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난민들이 몰려들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 10월 ‘도착 후 60일이 지나면 강제 퇴거’하는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9일 이 제도가 공식 발효되면서 4800명이 거리에 나왔다. 분홍색 책가방을 멘 아이의 가족도 그들 중 일부다.

이번 조치로 숙소에서 나온 이주민들 중에서 일자리를 얻은 경우는 극소수이고, 상당수는 아직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난민들에게 60일은 새로운 거처를 구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뉴욕시는 퇴거자 중에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 숙소 재배정 신청도 받고 있다. 그러나 거처가 마련될 수 있을지, 마련된다면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 등은 전혀 알 수 없다. 60일 기한이 만료돼 호텔에서 나온 사람들이 재배정 신청을 하러 인근 호텔로 향하느라 호텔 부근은 종일 짐 가방을 든 이민자들로 북적였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만삭의 임신부 마리아 쿠에로(26)는 AP통신에 “뉴욕시는 새로운 쉼터가 보장되지 않았다며 계속 경고를 하고 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네갈에서 온 쿰바 스노우(34)는 뉴욕포스트에 “남편과 나는 직업이 없고 우리에게는 5개월 된 아기가 있다”며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가정들은 거처를 옮기게 되면 아이가 전학을 가서 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뉴욕시는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에릭 애덤스 시장은 8일 언론에 “우리 정부는 절대 어린이와 가족들이 거리에서 자도록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수천 명의 난민들이 매일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 애덤스의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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